한국교회
March 27, 2015 | by B2B Missions
[B2BM칼럼] 신앙의 하부구조를 튼튼히 하라!

요즈음 이단 신천지의 내부 실체를 적나라하게 파헤친 CBS의 다큐멘터리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언급하기 조차 부끄러운 취약한 논리로 만든 엉터리 교리에 속아 수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이단에 가입하고 그것을 맹신하는 것을 다룬 방송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보면서 문득 필자에게 찾아 든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말도 안되는 교리책자들을 만들어 수 많은 사람들을 쇄뇌시키고 있는 동안 우리 기독교는 무엇을 했는가? 이단을 막는다고 내놓는 정책들이라는 것이 고작 교회문 앞에 출입금지 팻말이나 세워 놓고 평신도들의 자발적 성경공부를 금지시키고 집안단속에 나서는 것이 전부인가? 적이 처들어 온다면 미리 대비를 하고 군사훈련도 시키고 내부를 튼튼히 해야 하는데 단지 성을 쌓고 그 안에 안전하게 숨는 것이 상책인가? 과연 그것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모였다는 교회가 취할 태도일까? 등등 수많은 질문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치를 선점 당하다

한국 기독교(개신교)는 20세기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과 병행하여 급격한 성장을 경험했습니다. 그 성장의 속도는 세계교회사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과히 눈부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외적성장을 하는 동안 오히려 진정한 기독교의 가치는 퇴보한 것 같습니다. 마치 한국사회가 경제성장을 위해 평등, 이웃사랑, 돌봄이라는 가치구현을 뒤로 미루는 바람에 심각한 양극화의 문제에 직면한 것 처럼 교회도 성장을 위해 성도들의 영적 성장, 올바른 성경지식에 기초한 건전한 신앙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등한시한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지금 수 많은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예를들면, CBS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신천지라는 이단 단체는 그들 나름대로 만든 성경공부 교제를 통해 자신들의 망에 걸려든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들은 잘못된 교리로 무장되었고 그들의 신앙체계는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어떠한가요? “그리스도의 군사” (딤후2:3~4)라고 하지만 적과 대적할 수 있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으로 제대로 무장한 사람이 과연 몇 퍼센드나 될까요?

이뿐 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부릅니다. 겸손과 온유한 마음은 크리스찬들이 가져야 할 첫째 덕목입니다. 그런데 각종 도덕적 추문, 무리한 세불리기, 세상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동안 그 핵심가치마져 다른 종교에 선점당하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프렌치스카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교황은 방문기간 내내 소형차를 타고 세월호 유가족을 방문하고 시간을 내어 세례를 원하는 한 유가족을 세례하고 소외된 이웃을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가 소외된 이웃을 찾아 그들에게 충분히 먹을 빵을 나누어 준 것도,  환자들의 병을 고쳐 준것도, 변변한 직업하나 없이 힘들어 하고 있는 젊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찾아 준 것도,  진도 앞바다에 빠져 죽어간 아이들을 살려 낸 것도 아닙니다. 교황이 한 일이라곤 그들을 직접 찾아 그들의 손을 잡고 함께 울어 준 것 뿐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 기독교는 영화 쿼바디스를 통해 들추어진 민낯을 가리는데 급급하였고, 성소수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소에 난입을 하여 방해를 하고, 세월호를 폄하하는 발언들을 쏟아내었습니다. 위로가 아닌 가슴에 못을 박은 것이지요. 적어도 외부로 비추어지는 기독교는 그렇게 천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의 근원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올바른 궤도로 진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되찾는 것일 겝니다. 두말하면 잔소리지이지요. 그런데 참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야 그것을 되찾아 회복하지요. 그래서 지금부터 성도들이 모인 교회의 구조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조는 직책이나 은사, 사역 등 인간중심의 구조가 아니라 교회 그 자체의 하부구조와 상부구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하부구조

사도바울은 교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었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2:20~22).

기독교의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의 십자가와 부활이지요. 그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우리 죄를 예수님이 용서하셔서 우리는 죄로부터 자유하다’ 정도로 이해해왔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복음에 대한 그러한 이해는  너무도 초보적인 수준입니다. 왜냐하면 그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복음은 집으로 설명하면 기초석에 해당합니다. 그 기초석은 단순한 깨달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현재의 삶을 의미합니다. 본훼퍼(Bon Hoeffer)가 말한 ‘값싼 은혜’는 존재하는 ‘은혜’입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대가를 요구하니까요.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십자가를 내 것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의 사역이 나의 것이 되고 그의 군사가 되어 그리스도가 걸어가신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했습니까? 매일하는 새벽기도와 한 목소리로 외치는 통성기도는 한국 기독교가 만들어낸 전통이라 자랑합니다. 그런데 그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를 통해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안위, 가족의 번영을 위한 기도가 대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신유의 은사를 통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체험하려하고, 보이는 것만을 치장하는 동안 정작 진리의 보고인 성경에 위에는 먼지만 쌓여 갔습니다. 그리스도로 무장되는 것은 성령의 은사보다는 올바른 성경지식입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예수 그리스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요5:39참조). 올바른 성경해석에 기초한 설교가 아닌 아주 표피적인 지식만으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어떻게 외부의 적들에 대처를 할 것이며, 어떻게 올바른 신앙생활을 해나갈 것이고, 또 어떻게 영적으로 성장해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이를 수 있을까요?  신앙의 하부구조는 그리스도이고 복음이며 그것은 모두 올바른 성경에 기초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복음안에서의 삶, 성경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셋중 하나라도 결여되면 그것은 온전한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의 상부구조

교회의 상부구조는 그리스도라는 튼튼한 하부구조의 바탕 위에 세워지는 ‘성도들’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하부구조위에 성도가 온전히 세워진다면 그 때 비로소 성도들은 진정한 누림의 삶, 진정한 실천의 삶을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튼튼한 하부구조에 뿌리를 내린 삶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2:6~7).

위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해야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명령어는 단 하나입니다. “그 안에서 행하라!” 즉, “그 안에서 걸으라!”입니다. 그리고 뿌리를 박는 것도, 세움을 받는 것도, 교훈을 받는 것도, 믿음에 서는 것도 모두 수동태입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하시는 것이지요. 오직 우리가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감사로 넘치는 것입니다.즉, 감사함으로 넘쳐서 그리스도안에서 걷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러한 삶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일까요?

첫째, 성도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뿌리를 내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공급받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 자유, 평강 등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을 용납할 수 있고 남을 판단하기 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는 삶이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스도라는 튼튼한 기초위에 세움을 입어야 가능한 것이니다.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고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한다고 그리스도 위에 세움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세워졌는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은혜와 자유보다는 율법이 자신을 얽매고 있고, 평강과 안식보다는 늘 자신의 신앙이 불안하다면 그리스도가 아닌 자신이 세운 우상에 기초를 둔 신앙일지 모릅니다.

둘째,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뿌리를 내리고 지어져 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됩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됩니다 (요5:24). 더 정확히 말하면, 성령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습니다. 나의 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의로, 부족하지만 그의 의를 힘입어,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 서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더 나아가 기도가 바뀌게 됩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매달렸던 그 간구에서 벗어나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로 변하게 됩니다. 고난이 올지라도 그 고난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구하고 그 응답을 기꺼이 받아들에게 됩니다. 진정한 크리스찬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진정한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여 억지 눈물을 흘리게 하는 찬송이 아닌 진정한 자기고백과 간증이 있는 찬양을 드리게 되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묵묵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자신의 등 뒤에는 십가가가 얹혀 있고 앞에는 피를 흘리고 걷고 있는 그리스도가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진정한 감사입니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와 복음이라는 하부구조 위에 세워진 상부구조인 성도들과 그들의 합당한 삶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오늘날 우리교회에서는 이러한 모습을들 발견하기가 힘이든 것일까요? (물론 수 많은 성도들은 조용히 그길을 걷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사회에 비추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보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제 그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역피라미드형 구조

구조가 안정적이기 위해서는 하부구조가 넓고 튼튼하고 위로 올라갈 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형 구조여야 합니다 (이는 교회의 인사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러 저러한 공격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는 역피라미드형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는 누구보다 선한 일을 많이 합니다. 국가적인 재난이라도 발생하면 가장 먼저 팀을 꾸려 달려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남의 어려운 일이라면 발벗고 나섭니다. 성도들 간에 서로 돌아 보는 것도 누구보다 많이 합니다. 그 반면에 그 모든 선한 일들을 단숨에 삼켜 버리는 쓰나미를 일으키는 것도 교회입니다. 지나치게 화려한 교회를 짓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가 하면 교회의대형화로 인해 주위의 작은 교회들은 자립하지 못하고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가끔씩 터져 나오는 교회지도자들의 도덕적인 문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회의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럴때 마다 기독교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교회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두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부구조 즉, 복음에 대한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의 김세윤 박사는 이 모든 것이 목회자들의 신학의 부재가 불러 온 문제라고 일갈하셨습니다. 목회자들의 신학의 부재는 성도들의 신학의 부재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하부구조를 취약하게 만들수 밖에 없습니다.

이같은 취약한 구조가 만들어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중심이 아닌 인간을 중심으로 한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하부구조는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지니는 핵심가치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빠른 시간 안에 가속성장을 하기 위해그 모든 과정을 생략했습니다. 모든 것을 인간들에게 중심을 두는 인간 중심의 신앙에 촛점을 맞춘 것이지요. 한마디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촛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해왔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합니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10여년전에 미국 시카고 윌로크릭 교회의 빌하이벨스 목사는 성도들에게 공개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잘못 인도했습니다.” 그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사과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수 많은 프로그램들을 통해 성도들이 영적으로 성장해 갈 것을 기대하고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양적으로만 팽창했을 뿐 영적으로는 전혀 성숙이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성경의 기초를 가르친 주위 소형교회의 성도들이 영적으로는 더 성숙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지요. 그는 자신의 교회가 외화내빈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후 그는 모든 교회의 프로그램들을 성경에 기반한 영적 성장에 촛점을 맞추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부구조가 취약한 상태에서 상부구조만을 키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역피라미드 구조가 가져 문제점들

튼튼한 하부구조는 그리스도입니다. 인간들이 스스로 세운 하부구조는 언제든지 흔들릴 수 밖에 없고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역피라미드 구조는 필연적으로 성도들의 영적인 삶에 악영행을 미칠 뿐 아니라 외부세력의 공격에도 취약한 구조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들이 있을까요? 취약한 구조가 가져오는 문제를 내적인 문제와 외적인 문제로 나누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성도들의 내적인 문제입니다. 첫째, 은혜의 말씀을 온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율법주의와 그리스도 주시는 사랑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말씀에 기반을 두지 않은 선행은 교만과 자랑을 낳고 질투와 시기를 유발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도 연약한 성도들의 전형적이 모습입니다. 둘째, 이러한 연약한 신앙을 가진 분들은 세상을 대처하는 방법 또한 세상사람들의 그것과 다름없습니다.  예기치 못한 고난은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그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미성숙한 분들은 그 고난을 귀찮은 불청객으로 여기고 빨리 그것을 물리쳐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지요. 셋째, 연약한 사람들은 말씀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용합니다. 성경을 문자대로 해석하여 성경에서 문제를 해결받은 사람이 있으면 자신에게도 그런 기적이 일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말씀은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뜻과는 무관하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성경을 편리한대로 해석하는 것이지요. 넷째,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의 속임수에 빠지는 이유도 자신이 확실한 복음의 의미를 모르고 성경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외부의 대처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전쟁을 치를 능력이 전혀 없는 나약한 군사들은 적이 처들어 오면 도망치기에 급급하거나 쉽게 항복하고 포로가 됩니다. 한국교회에 수많은 이단들이 준동을 하는데도 그것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이단들의 공격에 휘둘리는 이유는 바로 하부구조의 취약성 때문입니다. 정작 성경을 제대로 알고 많이 읽어야 할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많이 시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신천지가 문제를 일으키자 그나마 있던 평신도들간의 건전한 교류마져 없애는 추세입니다. ‘뭐 무서워서 장못담그는’ 웃지 못할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는 간단한 사영리식의 구원관만으로 버텨온 신앙의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도덕적인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실수를 안하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안짓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실수를 하고 죄를 지었을 때라도 진정으로 회개하거 하나님 앞에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 가치입니다. 일부 목회자들이 저지른 잘못을 비난받고 있는것은 그 행위자체 보다도 회개하지 않는 마음이요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엎드리지 않는 태도 때문입니다. 용서는 진실된 회개와 엎드림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외부적인 문제는 외적으로 세력을 과시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교인 수가 영성의 지표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고, 화려한 예배당이 예배의 질을 좌우한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그릇된 사고는 세력확장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교회를 이끌게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들의 세력과 힘에 의해 보호받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죄많고 연약한 인간들을 용서하여 자녀삼는 분이 하나님이지요.

대안은 무엇인가?

기독교신앙은 그리스도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인간이 아닙니다. 돈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기준이 되고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그 사랑, 그 은혜를 가지고 세상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 사랑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바로 성경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올바른 진리탐구와 이해가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중심에서 하나님 중심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으로 이행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것이며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성경으로부터 배워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바르게 성경을 배우고 이해하고 실천방법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신천지가 가르치는 성경공부의 절반 정도라도 성도들에게 기초를 세워 주고 그들에게 올바른 신앙관을 만들어 준다면 내적인 문제들이든 외부의 공격이든 하등의 문제될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약자들 진정으로 돌보는 일입니다. 죄를 죄로 모르는 사람들도 약자입니다. 성 정체성, 사상의 문제, 각종 중독의 문제 등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해꼬지를 하는 것 보다는 그들을 긍휼의 마음으로 품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빛이고 소금입니다. 빛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소금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니지요. 빛은 밝아야 하고 소금은 짜야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만약 어두움에 속했다고 생각하면 그가 빛이 아닙니다. 만약 짜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소금이 아닌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빛이요 소금이라고 말합니다. 그 정체성은 성경에서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성경으로 돌아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그 진리를 올바로 알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만이 우리를  올바로 알게 하고 올바로 서게 하며 올바로 걷게 합니다. 지금 바로 성경을 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는 첫걸음입니다 [B2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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