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
March 21, 2015 | by B2B Missions
제자훈련시리즈[3] 제 4강 어떤 것들이 거짓자아를 만들어 내는가? (거짓자아의 이면)–세번째

잘못된 충동 2: 내가 옳은 거지? (Am I right?)

내가 무조건 옳아야 !

K권사는 지난 번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 K권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정은 이렇습니다.

그날 소그룹 모임 주제는 성령의 은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고린도 전서 12장 말씀을 놓고 서로 체험한 것이나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K권사는 평소에 자신에게 특별히 하나님께서 예언의 은사를 주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최근에 이러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을 미리 알려 주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소그룹 멤버들은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권사님은좋겠어요. 하나님이 권사님을 특별히 사랑하는 모양이예요.” 라고칭찬을 하며 동조하는 멤버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소그룹 멤버들로 전혀 K권사의 말에 반대를하기는 커녕 심지어 말 중간에 끼어들지도 않았습니다. K권사는 소그룹 멤버들이 늘 자신이 하는 말에 동조를 한다고 생각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한번도 자신의 주장이 틀리다고 생각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교회에 참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L집사가  K권사의 이야기는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을 한 것입니다.

“난 참 재수가 없을려니까 별개 다 까불고…아니, 초심자가 뭘 안다고 난리야 난리는?”

그날 자신의 말에 사실상 반대의견을 제시한 L집사를 생각하면 그 집사가 참으로 가소롭기까지 했습니다.  K권사는 다음 날부터 모임에 참석한 소그룹 멤버는물론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한 명씩 만나면서 자신이 옳았음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L집사에  대한 인신공격까지 서슴치 않았습니다.

“젊은 친구가 왜 그렇게 버릇이 없어? 그래도 나이 한 살이라도 많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고분고분 들어야지.”

그의 말이나 행동은 이미 그날 모임에서 했던 자신의 생각이나 체험과는 무관한 쪽으로 흘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객관적으로 그가 옳음을 주장하는 단계’에서 ‘주관적으로 그가 옳아야 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실 위 사례에서 말한 K권사와 같은 사람들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얼마 수고를 하지 않고도 쉽게 찾아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에게 동조하는 사람들과만 교제를 하려 합니다. 물론,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차없이 보복을 하게 되지요. 그런 사람이 개입된 모임은 오래가지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금방 사분오열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극히 주관적인 것이 특징입니다. 객관적으로 검증된 이론을 주장하기 보다는 자신의 체험이나, 자신의 편협된 지식을 주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옳다는 것을 끝까지 확인하려 합니다.

“나는 체험으로 말하는거야!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말만 많아가지고…”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무시하거나, 자신에 동조하는 편을 끌어 들여 자신의 옳음을 입증하려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서는 객관적 진리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지식, 자신의 경험이 곧 진리이니까요.

왕국의 분열

열왕기상 12장에는 통일왕국 이스라엘이 솔로몬이 죽은 이후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분열되는 비극적인 사건의 계기가 되는 에피소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솔로몬 왕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왕으로부터 물려 받은 영토를 더욱 확장하였으며,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성전을 건축하였고,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수 많은 잠언을 지어 백성들을 가르친 왕입니다. 하지만 그에게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수많은 도시들과 성전들을 건축하면서 백성들로부터 과다하게 세금을 징수하고 또 백성들에게 과다한 노역을 시킨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보면 솔로몬은 겉으로는 화려하고 강대한 국가를 만들었을지 모르나 그의 그 화려함과 강대함의 이면에는 백성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아버지 솔로몬 왕의 이러한 자산과 부채 모두를 물려 받은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물려 받은 자산은 더 이상 그에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에게 남겨진 것은 백성들을 힘들게 한 부채뿐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2장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디.  르호보암이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회중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또 솔로몬을 지근 거리에서 모셨던 ‘노인들’의 의견도 묵살했으며, 그 대신에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소년들의 의견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북 이스라엘의 대표들(실제로 인구나 땅으로보면 그들이 다수였음.)이나 심지어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노인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자신의 정책에 반영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국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이 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가장 비극적인 일 중의 하나로 남게 됩니다.

내가 옳다니까! 안그래?

래리크랩 Larry Crabb은 K권사나 르호보암 같은 사람들이 보이는 중요한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뜻에 맞는 사람들을 찾게 됩니다. 자신의 의견을 바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지요. 아무리 객관적으로 입증된 자료들이 제시되어도 그것들이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묵살하되고 맙니다. 물론 자신보다 훨씬 권위가 있고, 대항하지 못할 존재가 나타나기 전에는 말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동조자들을 구하기 위해 흔히 던지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옳다니까! 안그래?”

둘째, 이러한 사람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설자리를 잃습니다. 아무리 건전하고 객관적인 의견도 소용이 없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이러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나다나엘입니다. 먼저 예수님을 만난 빌립은 나다나엘을 발견하자 그에게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들이 기록한 그 사람 (메시아)를 만났는데 그 사람이 바로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말을 했습니다 (요 1:45참조). 그러자 그는 친구 빌립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요1:46). 나다나엘은 아마 빌립의 말을 듣자마자 즉각적으로 반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빌립에게 한 이 말은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어이, 빌립! 아니 모세율법과 선지서에 기록된 것이라며? 그럼 나사렛에서는 전혀 그런 사람이 나올 수 없어! 넌 성경도 모르냐? 이런 무식한 녀석 같으니라구!”

아마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이 직접 나타나셔서 그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그에게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절대로 바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빌립은 엉뚱한 이야기나 하고 다니는 사람으로 요즈음 같으면 왕따를 당했을지 모릅니다. 물론 나나나엘과 그 친구들에게 말이죠.

세째,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논쟁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과 논쟁을 하면 ‘진리’가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분쟁이 나거나 진리가 묵살당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람은 남의 논쟁에 끼어들어 그 논점을 금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기술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자기 편을 만들고 동조를 구합니다. 자신의 편이 없고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리면 일단은 후퇴를 하지만 마음 속으로 절대 그것을 받아 들인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은 사람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요? 왜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화를 내고, 편가르기를 하고, 남을 헐뜻고 비방하는데 익숙한 것일까요?  다음의 사례를 통해 그 원인을 알아 보기로 합시다.

(사례: Y박사 부부 이야기) Y박사부부는 결혼을 한지 25년이 되었는데 부부간의 갈등으로 인해 최근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 Y박사 부부는 결혼초부터 거의 매일 부부싸움을 했다. 아주 사소한 다툼으로부터 매우 심각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화가 다툼으로 시작해서 다툼으로 끝이 나는 것 같았다. Y박사는 자신의 아내가 늘 자신의 생각에 잘 맞추어 주지 못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지 약 10년정도 되었다. 처음 교회에 다닐 때에는 결혼 후 처음으로 가정에 평화가 찾아 왔다. 하지만 그것도 채 몇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오히려 이제는 종교와 관련한 문제까지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었다. Y박사는 결혼 초부터 부부싸움을 하면 아내를 폭행하기도 했다. 물론, 부부싸움이 끝이 나면 늘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폭언과 폭행하는 행동이 바뀐 것은 아니다. Y박사의 아내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자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을하고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Y박사는 아내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면 아내가 고분고분 받아 주어야 하는데 사사건건 반대를 하는 겁니다. 우리 집에서 저의 권위는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 앞에서도 대놓고 반대를 하고 사사건건 이의를 제기하니 도대체 가장으로써 권위가 서야 말이죠. 저는 아내가 제 의견에 동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아내를 보면 답답하다는 생각부터 듭니다. 하는 것이 모두 마음에 안들어요. 어떤 때에는 도대체 아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될 때가 많아요. 대화를 하다 보면 구체적인 것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예 저의 화를 돋구려고 작정을 한 사람같다니까요.”

이에 대해 Y박사의 아내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합니다.

“제 남편은 공학박사입니다. 미국 최고의 학부와 최고의 대학에서 박사를 받았고,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직장에서 수석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으니 그 실력은 인정해야죠. 하지만 남편은 자기가 모든 분야에서 박사인줄 알아요. 사실 저는 교육학을 전공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 교육문제는 제가 남편보다 더 낫다고 생각을 합니다. 가사 일도 그렇고, 사실 부부가 뭐 고상한 이론을 놓고 다투겠습니까? 다투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다. 전화시간이 길다. 뭐 이런 것들이예요. 심지어 TV드라마를 보다가도 의견이 다르면 부부싸움으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 남편은 저의 의견은 완전히 묵살합니다. “그게 말이 되냐?” “무식하다!” 이런 식입니다. 솔직이 남편의 말을 듣다 보면 너무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소리를 지르게 되고 그것이 큰 부부 싸움으로 이어집니다. 더 분통이 터지는 사실이 있어요. 그것은 이 사람이 교회에나 사회에서는 둘도 없는 신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우들은 남편에 대해  똑똑한 사람이 더 없이 겸손하니 일등 남편이라고 합니다. 제가 부럽다나요? 실제로 이 사람은 밖에서는 정말 작은 예수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집에만 오면 망나니가 되니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Y박사 부부의 사례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뭐 이런 것을 자기고 난리야. 어느 집이 이렇지 않은 집이 있어? Y박사의 한가지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에게 손지검을 하는 것이지. 그게 뭐 이혼할 일이라구. 그러면 난 벌써 백번도 더 이혼했겠다.”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일도 아주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고 부부싸움에 큰 싸움으로 확대되는 이면에는 “내가 옳아! 내말에 동조를 해!”라는 자기만의 독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을 몇 가지 단계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첫째, Y박사와 같은 사람들은 늘 미래를 철저하게 준비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입니다. 언뜻 보면 참 좋은 성격이죠. 현재 어떤 일을 할 때도 늘 미래가 걱정입니다. 사실 미래를 좀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현재를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안심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당연히 남들에 비해 뛰어난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100%확신이 서질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또 노력을 하는 수 밖에요. 이런 노력들은 경쟁에서 이기려는 마음으로 치부하고, 늘 경쟁심이 강한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미래를 좀더 확실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따라서 소위 엘리트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성격의 소유자가 많이 나타납니다. 물론 엘리트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둘째, 미래에 대한 불안은 부단한 노력과 주관적 자기확신이라는 반응으로 나타납니다. 따라서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자기들만 성공한 경험들을 만들어 내게 되는 것이지요. 문제는 그 성공한 경험이 자신만의 것이고, 남들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것인데 남들에게도 적용을 하는데 있습니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 적용하려 합니다. 가족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신과 같지 않으면 자신이 불안해 집니다. 마치 자신이 인생에서 실패한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지요.

세째, 이러한 생각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경청 보다는 강요와 묵살로 나타납니다. 우선 자신의 가치관이나 신념을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강요를 합니다. “내가 옳으니 내 의견을 따라야 해!” 이런 식이지요. 그리고 상대방이 제시하는 의견이 자신과 다를 경우는 남의 의견을 묵살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늘 자신이 옳았고, 자신이 옳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지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배우자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할 뿐 아니라, 교회나 사회 등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서는 자신들만의 그룹을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편가르기를 하는 것이지요.

사도바울은 거의 가는 곳 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대표적으로 고린도 교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사도바울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고전1:11-12).

고린도 교회가 왜 이렇게 분파를 겪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자신 만이 옳다는 생각, 자신이 받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만이 더 권위 있다고 서로 주장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옳아! 그러니 내의 견에 동조해!”라는 주장의 근저에는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마음, 즉, 역지사지 (易地思之) 하는 마음이  그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혼의 원인을 살펴 보면 성격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여자들이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무시를 당하고, 자신의 삶이 없이 살아온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이들이 겨우 꺼내 놓은 것이 “이제는 더 이상 못살아!” 입니다. 이 말은 “당신만 옳아? 나도 옳아!”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툼과 분쟁이 있는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 (빌2:3)라고 권면한 것을 기억해 보십시요. 하지만, 이러한 권면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나도 틀릴 수 있지!”라는 생각을 일시적으로 하다가도 이내 본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나의 내면 속에 이미 굳어져 버린 나의 ‘성향 (성격)’때문입니다. 나는 이미 내가 옳아야 한다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어떤 것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나의 의견에 누가 참견이라도 하면 속에서 알지 못하는 화가 나면서 약간 언성을 높이면서 나의 의견을 관철하려는 경향이 있습니까? 아내가 (또는 남편이) 좀 더 현명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듭니까? 지금도 누군가를 만나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자신의 마음에 들지 사람이 있으면 그를 쉽게 외면합니까? “안만나면 그만이지 뭐!” 이러면서 말이죠. “내 주변에는 왜 이렇게 나의 마음과 다른 사람들만 있지?” 라는 생각을 합니까? 의견 다툼이 있던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억지로 외면합니까? 의견충돌로 인해 자주 부부싸움이 일어납니까? 그러면 일단 내가 횃불을 밝히는 자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 스럽다는 것이 어쩌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생겨난 왜곡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회개를 한다든지, 수 많은 예배에 참석을 한다든지, 그 원인을 만든 왜곡된 관계를 찾아 그와 진심으로 화해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미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은 마음이 굳어진 기간만큼 오래 걸리는 문제일 수도 있으니까요.  [B2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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