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외과
March 11, 2015 | by B2B Missions
제자훈련시리즈[3] 제3강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거짓자아의 특징) — 첫번째
[제자훈련 3강 강의 내용을 세번에 걸처 올릴 예정입니다. 그 첫번째입니다.]

3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첫번째)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에 대해 많은 기독교인들은 그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것이지 인간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낸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하지만 앞의 명제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를 만들었다”라는 말은 참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 말이 참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아담과 이브는 자신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직후 자신들이 벗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고 그들은 나무 뒤로 자신들을 숨겼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나무뒤에 숨어 있던 아담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창3:10).

아담은 자신의 실체를 ‘벗음’으로 규정하고 그 ‘벗음’을 수치로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수치심은 두려움을 낳았고, 그 두려움은 그들로 하여금 옷을 만들어 입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피하게 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스스로 옷을 만들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그것을 우리는 ‘종교’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인간을 하나님으로 멀게 만듭니다. 인간들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수 많은 종교형식과 종교적 삶을 살아가려고 애를 쓰지만 그러한 삶은 오히려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과 멀리 떨어진 존재인지를 알려 주는 지표가 될 뿐입니다.  따라서 종교(또는 종교적 행위)란 하나님과 인간이 분리되었고, 분리되는 순간 인간들은 두려움을 느꼈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인간들의 노력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종교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고 그것으로 스스로 안심거리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기독교도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는 없는  빈 껍데기 종교만 남게 될 수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멀어진 사람들의 특징 중 가장 큰 특징은 스스로 완벽하게 자신을 세우려는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일종의 ‘자기숭배’인데 자신이 생각하는 완벽한 무엇으로 자신을 포장하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인 숭배하는 ‘자기’가 타인에 의해 조금이라도 침해를 받는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들어 하고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그 ‘신성불가침 영역’을 침해 받았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로버트 멀홀랜드 박사는 그의 책 [예수의 길에서 나를 만나다 (원제: Deeper Journey)] 에서 ‘거짓자아’ (false self)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거짓자아가 지니는 특징에 대해 다음 여덟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거짓자아는 두려워하는 자아입니다.

두려움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두려움이 찾아 오는 것일까요? 갑작스러운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에데거는 “두려움은 불안에 대비시키는 하나의 감정적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불안은 확실한 정황을 말합니다.  어떤 정황이 자신의 내면에 있던 본래의 자기를 흔들어 그것을 감정으로 표출해내는 것을 불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반면 두려움은 본래의 자기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만드는 감정이라는 것이지요. 즉, 참된 자아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에 두려운 감정은 인간으로 하여금 거짓된 행동을 하게 만든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꾸준히 지속적으로  자신만의 ‘성’을 쌓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옳은 것이든 잘못된 것이든 상관없이 자신들이 생각한 자기의 성(아성)을 구축해 내는 것이지요. 그렇게 구축된 그것을 ‘거짓자아’라 부릅니다. 두려움을 아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약속한 무언가를 파기하지 않고 자신을 잘 통제하여 끝내 만들어 내고야 마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불안 요소를 없애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지요.  로버트 멀홀랜드는 “거짓자아로 살 때에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의 참된 중심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게 될 것과, 연약함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부당하게 이용당하게 될 것을 두려워 한다” 고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은 한 방향을 향하여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야 하고 그 성취한 것으로 자신을 포장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포장된 자기는 자신이나 타인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늘 확인을 받으려 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 확인 받으려는 그것이 바로  거짓자아입니다. 로버트 머홀랜드에 따르면  거짓자아로 인한 두려움을 다음 몇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거짓자아가 우리를 관리할 때에는 우리는 존중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우리 자신이 기준이기 때문에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그 시선을 너무 두렵게 느끼는 것이지요. 이러한 거짓자아가 삶을 주관할 때 인간들이 생각하는 기준은 두가지 뿐입니다. 하나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보는 나는 만족스러운가?’입니다. 만약 둘 모두에게 합격 판정을 받으면 우리는 스스로를 성공한 사람이라 확신하게 됩니다. 완벽하게 만들어서 거짓인 그것을 나로 인식하게 만들지요. 반대로 타인이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나 내가 만족하지 못할 때에는 내가 만족하는 수준까지 이르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에피두미아’ 즉, 열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설정해 놓은 ‘선’ (善)의 끝에 이르려는 내적욕망을 일컫는 말이지요. 사도바울은 타인이 요구하는 기준의 최종점을 율법의 완전에 이르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지극히 선한 것이고 그것을 달성하면 자신은 온전한 선을 스스로 성취해낸 사람이 된다는 것이었지요. 물론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그 안에 거하는 놀라운 신비를 경험한 이후에 자신이 그동안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이요 ‘배설물’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의 삶이 거짓지아에 의해 주도되면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타인들에게 자기 자신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행여 자신의 약점이 노출될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존재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됩니다. 이러한 두려움은 두가지로 나타나는 데 하나는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존재가 폭로될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에 대해 거짓으로 쌓아 올린 거짓자아는 어떻게 반응할까요?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상대방의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일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목숨과도 바꾸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거든요. 저는 이런데서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적절한 예가 될까해서 해보려고 합니다. 이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2009년 5월 전직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대한민국 사회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엄청난 충격에 빠뜨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당시 수사지휘라인의 핵심적인 위치에 계셨던 분이 한 언론기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이야기가 세간의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수사를 하던 검찰은 구속을 그리고 권력의 다른 한 축인 국정원은 그냥 전직 대통령을 망신만 주는 것으로 된다고 망신을 주기 위한 일을 했다는 것이지요. 그를 망신 주기 위한 것 중의 하나가 그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말을 꾸며내어 언론에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 그러한 아이디어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뉴스는 서민 대통령으로 청렴의 이미지가 강했고 퇴임하고도 시골에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던 전직 대통령에게는 구속당하는 것보다 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그의 죽음과 ‘논두렁 명품시계’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당당하게 구속되는 것이 자신이 도덕적으로 망신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논두렁의 명품시계는 그가 그동안 쌓아 왔던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린 것이었을 수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그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별 면목이 없었을 것이고, 그 두려움은 그로 하여금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게 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자신들이 모르는 그러한 두려움들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만의 평판에 해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말이지요.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하나요? 인간은 결코 그것을 내려 놓고 참자아로 나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강화하지요. 더 벽을 두텁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째, 거짓자아는 두려움을 분노로 분출하게 합니다. 분노를 표출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는 동시에 자신의 거짓자아가 침해를 받고 있다는 타인을 향한 신호이기도합니다. 우리의 외부세력들은 끊임없이 나의 거짓자아를 건드립니다. 그중에 가장 나를 건드리는 외부세력은 바로 가족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가장 많이 분노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주 쉽게 할 수 있지요. 언제 분노가 일어나나요. 상황을 어찌할 수 없어 스스로도 힘들어 하고 있는데 그것을 건드릴 때가 아닌가요? 나의 약점을 나도 잘알고 있고, 그것을 겨우 가리고 사는데 가족들이 늘 그것을 건드리는 거예요. 그럴 때 가장 효과적인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이 분노입니다. 분노를 표출함으로서 자신이 쌓아 온 거짓자아를 망가뜨리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는 것이지요.

“누가 나를 건드리기만 해봐라!”라는 말을 종종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그런 말을 종종 하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요. 이 말은 “나의 거짓자아가 노출되어 내가 너무 힘드니 제발 나를 이제 그만 놔두어라!”라는 경고입니다. 그럴 때 정말 누가 조금이라도 신경거스르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어떻게 하죠? 바로 분노를 표출하고, 미친듯이 날뛰는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 닥치는대로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둘째, 거짓자아는 끊임없이 자신을 보호하려 합니다

두려움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을 발동시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에 의해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쫒겨날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쫒아내오신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창 4:14).

가인은 하나님이 자신을 쫒아냄으로써 자신에게 생길 세가지 문제로 두려워합니다. 첫째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란 내적 참 자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자기 스스로 거짓자아를 만들어 그것으로 자신을 지배해야 하지요. 하나님이 없는 사람, 진리가 그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스스로가 자신의 판단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자신이 기준이 될 수 밖에 없고 그것이 거짓자아를 더 강화하게 만듭니다. 둘째, 어디에도 정착하시 못하는 마음입니다. 무엇을 해도 허전하고 만족이 없습니다. 늘 허기진 것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마셔도 마셔도 갈증이 계속남아 있으며 어디를 가도 자신을 반겨 주는 사람이 없는 것같은 정처없는 나그네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놋 땅에 거했습니다. 그가 정착한 땅의 이름이 방황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몸은 정착했으나 마음은 정착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방황한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그가 느낀 두려움은 타인에 대한 불안감입니다. 자신을 보호할 자는 오직 자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끊임없이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쌓아 올립니다. 그가 방황이라는 이름의 놋 땅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성을 쌓고 그 안에 갇혀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거짓자아가 주는 두려움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버트 멀홀랜드는 이러한 자신을 보호하려는 거짓자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거짓자아는 우리의 정체성을 잘 정의해 줄 뿐만아니라 실제의 또는 가상의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관점과 태도, 이성과 감성의 습관, 행동방식, 관계구조, 주변세계와 관계하고 대응하는 방식의 복합적인 기반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 자아를 위해 소중한 자원을 축적하고자 한다. 이 자원으로 우리는 자신을 더욱 더 보호한다. 우리의 거짓자아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가 위협당할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서 방대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우리의 거짓자아는 또 다시 우리의 정체성과 가치확인 뿐 아니라 우리의 행복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자원상실의 경우를 대비해 귀중한 물적자원을 개발한다. 지식은 힘이 있기 때문에 거짓자아는 충분한 지적자원과 정보자원을 얻으려 한다. 이러한 자원을 통해 거짓자아는 우리를 좀 더 강력하게 통제하고 보호하고 방어하는 영역을 확대한다.”

누구나 이 거짓자아의 한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끊이 없이 노력했고, 지금도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 않으면 불안한 무엇이 우리를 엄습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렇게 훈련을 받고 성경공부를 그야말로 치열하게 하는 이유가 뭐죠? 많은 사람들은 진리에 대한 열정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조차 자신을 포장하는데 이용합니다. 잘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많은 자원들로 자신의 보호막을 만들어 그 안에 숨어 있는지 말이지요. 그 중에 상당부분은 자신이 아닌 거짓된 것입니다. (계속)

 

Comments are closed
단체명: B2B Missions    특수법인 고유번호: 603-82-69556
대표: Chang, Kevin Wooseung    주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53, 8층 855호    전화: +82 2-702-1491
B2B Missions © 2016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