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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3, 2015 | by B2B Missions
제자훈련시리즈[3] 제3강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거짓자아의 특징)–세번째
[3강 세번째입니다]

제3강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여섯째, 거짓자아는 자신을 드러내려 합니다.

로버트 멀홀랜드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거짓자아로 인해 자신들을 어떻게 밖으로 홍보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 삶과 세상의 중심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리를 탈취하면, 거짓자아는 무엇보다도 우리와 우리의 계획을 홍보한다. 심지어 가장 고귀한 행동조차도 그 행동을 지켜보는 사람들과 그 행동이 가져 올 유익을 깊이 의식하면서 행한다. 남의 시선을 의식함으로써 최선의 행동은 더렵혀지게 된다. 그 행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동자체에 필요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홍보하는 것이다. 거짓자아는 열광적이고 정력적으로 프로젝트에 관여하고, 운동에 참여하고, 위원으로 활약하며, 공직에 출마한다. 그러나 우리의 초점은 항상 어떻게 그런 활동들이 우리의 위신을 높이고 우리의 정체성을 공고히 랄 것인가에 있다.”

사역을 해도 좀 생색나는 사역, 이름이 나는 사역, 남들에게 많이 노출되는 사역을 하는 것이 구석진 곳, 그늘진 곳,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서 조용하 사역하는 것 보다 더 선호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도 이 강의에 많은 사람들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로 섰으면 하는 바램 때문이지요.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제 내면을 들여다보면 금방 내 안에 다른 내가 나를 조종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홍보라는 것이지요. 이름을 내고 유명세를 타고 그리스도 보다는 내가 영광을 받는 위치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늘 나를 유혹합니다. 그래서 강의에 사람들이 없으면 실망하고 박수가 많으면 우쭐해집니다. 미국 켈리포니아 얼바인에서 그것도 주류 사회의 언어인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아주 적은 인원을 놓고 강의를 하면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릴 수도 있어요. ‘내가 뭔가?’ 싶은거죠. 그것이 인간입니다. 폼좀 잡고 싶고 남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은 것은 거짓자아에 의해 조종당하는 우리의 모습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에서도 누군가가 자신의 사역을 알아 주는 그런 곳에서 일을 합니다. 교회의 일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런 이름없는 사람이 주차봉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주차봉사를 할 사람이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당연히 ‘저 사람은 저기에 있는것이 어울려!’ 이렇게 말이지요. 그런데 누가 보아도 한 번에 알아 볼만한 사람, 다시 말해 국회의원이라든가 대학교수라든가 유명한 연예인이 주치봉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 봉사를 하는 사람에 대해 칭찬을 합니다. “그런 사람이 주차봉사까지 해? 그사람 참 멋진 사람이구만…”  말도 안된다구요? 이엇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분은 명예에, 권력에, 재산에, 이제는 교회에서 겸손까지 겸비한 완벽한 사람으로 둔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자기홍보라고 말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해야할 것으로 생각하는 교회봉사까지도  자기를 홍보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일곱번째, 거짓자아는 무언가를 탐닉하게 만듭니다.

인간에게는 욕구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셔야 하고,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합니다. 추우면 옷을 입어야 하고, 자신들이 주거할 곳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식주라고 하는 이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입니다. 이 욕구 외에 인간들은 성인이 되면 결혼을 하여 아이들도 낳아 단란한 가정도 꾸미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당연히 인간이라면 기본적인 것들이지요. 그런데 저는 한가지 욕구를 더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심어 놓은 것이지요. 바로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3:9~11).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이 세상 것을 추구하지만 그래도 다시 돌아갈  그곳을 사모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 영원은 하나님과 우리사이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고 깨어지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기쁨, 참자유, 안식이 없기 때문에 이세상에서 그것을 대체할 것들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무언가 다른 것에 중독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은 중독이 있습니다. 술을 먹는 사람들은 술중독, 담배를 피우는 분들은 니코틴 중독, 도박 중독, 마약중독, 성중독, 심지어 주식투자를 하는 분들은 주식중독, 조깅을 좋아하는 분들은 조깅중독, 음식을 탐닉하는 분들은 음식 중독이 있습니다. 인간들은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는데 그것이 너무도 자연스러워서 병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왜 중독이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탐닉이 주는 기쁨보다는 그것을 하지 않았을 때오는 심리적 불안감 때문입니다.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부분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데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인지라 채워도 채워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반복적이고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좋아서 그것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준 그 기쁨, 그 안식, 그 자유를 대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 대상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을 중독이라고 말합니다. 거짓자아가 가져온 비극 중의 하나는 거짓자아기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게 만든다는데 있습니다. 인간이 거짓의 벗고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러한 종교적 행위들은 거짓자아를 공고히 구축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종교중독에 빠지기도 하지요,

거짓자아에 주도된 탐닉은 인간에게 일시적인 쾌락을 가져다 줍니다. 물론 아주 찰라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주는 것은 인간이 체험할 수  있는 극단적인 것까지 가져다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십니까? 여기서 로버트 멀홀랜드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요.

“이러한 만족은 보통 무서운 강박충동으로 이어진다.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으로도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갈망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거짓자아는 단지 더 많은 기쁨과 즐거움을 약속하는 다음 것으로 넘어가기 위해, 다른 기쁨과 즐거움을 다 써버린다. 어떤 영역에서 강박충동은 중독이 되고, 우리의 자아는 이미 오래 전에 기쁨과 즐거움처럼 보이는 것을 상실한 파괴적 행동의 노예가 되어 있다.”

여덟번째, 거짓자아는 구별하는 자아입니다

사실 구별이란 좋은 것일 수 있습니다. 좋은 것과 바쁜 것을 구별하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며,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해내는 것은 좋은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적 의미로 거룩함을 구별됨으로 설명합니다. 문제는 구별이 아니라 구별의 기준에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가 고넬료라는 이방인에게 전도를 하기 전에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상한 짐승들 더러운 것들을 그에게 먹으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께끗하지 않은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겠나이다” (행10:14). 그러자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라는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왔습니다 (행 10:15). 인간들은 누구가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사회적 기준이든 개인적 기준이든 기준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흔히 “저 사람 왜그래?”라고 말을 하곤 합니다. 이 말은 상대방의 행동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뿐 아니라 도대체 그 행동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런 이유로 인간들은 자신과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편을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자신의 편을 들어 주는 우군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이것을 거짓자아의 확장이라고 말합니다. 일단 자신의 편이 만들어지면 그 편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냅니다. 나는 옳고 상대방은 그르다는 것이지요. 재미있는 사실은 한 집단에 속하면 그들이 공유하는 이데올로기를 인정해야 합니다. 설령 잘못되었어도 그르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것은 그 집단이 지니고 있는 ‘집단적 거짓자아’를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한국교회 만큼 이단이 많은 곳도 없습니다. 그냥 자신의 가치를 건드리면 이단으로 매도해 버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보다는 다름으로 인해 나와는 같이 할 수 없는 존재, 나아가 공동의 가치도 나눌 수 없는 존재로 매도해 버리면 그만이지요. 물론 성경에 나오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것을 통한 구원을 해치는 이야기를 하면 기독교의 핵심가치를 건드리는 것이므로 함게 할 수 없고 당연히 이단으로 정죄됩니다.  그러나 세부사항만 달라도 교단이 나뉘고 조금만 이상해도 이단으로 낙인을 찍어버라는 것은 ‘집단적 거짓자아’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습니다. 교집합은 생각하지 않고 나와는 다른 부분들만 부각해서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집단과 집단의 서로 다름은 대립적이며 파괴적인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끼리끼리 편을 나누어 서로를 비난하는 일은 우리가 너무도 흔하게 보는 광경 중의 하나이지요. 그런데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들도 그 어느 집단엔가 속해 있으며 그 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른 집단들을 욕하고 비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나와 남이 단순히 다른 집단에 속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이 적이 될 수 있고, 철천지 원수가 될 수 있고, 요즈음 IS에서 보듯이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참수할 수도 있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거짓자아의 여덟가지 모습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개인에서부터 집단에 이르기까지 거짓자아가 만들어 내는 것들은 너무도 엄청난 것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인처럼 살인을 할 수도 있고, 다윗처럼 간음을 할 수도 있으며, 야곱처럼 사기를 칠 수도 있습니다. 집단적으로는 바벨탑을 쌓을 수도 있고, 송아지를 만들어 숭배를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도 있습니다. 거짓자아는 참 매력적인 모습을 다가와 당신에게 속삭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갈때 자신의 거짓자아가 폭로되는 수치심보다는 차라리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세상적으로 자신의 가치를 세워나가는 것이 훨씬 좋은 것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보다는 현실의 것을 추구하게 만들고 세상을 탐닉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게 되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이 거짓된 자신의 모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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