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March 12, 2015 | by B2B Missions
제자훈련시리즈[3] 제3강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거짓자아의 특징) — 두번째
[강의안 두번째입니다]

3 무엇이 당신을 움직이는가?

셋째, 거짓자아는 자기 것을 만들려고 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가치를 증명합니다.” 한 건설회사의 아파트 분양광고 문구가 기억납니다. 한 사람의 가치를 사는 아파트가 증명을 해준다는 말이지요. 이미 사람들은 스스로의 가치를 자신의 시는 곳과 일치시키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얼바인에 사는 사람들, 뉴포트 비치에 사는 사람들, 산타 아나에 사는 사람들, 자신들이 사는 곳을 말하면 그사람의 가치조차 다르게 평가를 하지요. 베버리힐즈에 사는 사람들과 사우스엘에이에 사는 사람들은 더더욱 극명합니다. 서울도 마찬가집니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 청담, 대치동 등은 그곳에 사는 것 만으로도 사람들을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현 시대의 가치기준입니다. 호모에코노미쿠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경제적 동물이다’라고 번역하면 되나요? 이 말이 소유가 곧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하는 이 시대의 대표적 인간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을 치장하는데 몰두해 왔고, 그리고 그 치장된 것으로 자신과 남들을 평가해 왔습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요즈음은 ‘맘몬’만큼 인간을 더 잘 포장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맘몬은 모든 다른 것 보다 사람들을 금방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으니까요. 이 맘몬은 하나님의 존재를 금방 잊게 만듭니다. 치료를 위해서는 아주 돈이 많이 드는 희귀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요? 가난한 사람은 포기하고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런데 돈많은 사람은 용한 의사를 찾지요. 물론 용한 의사를 찾은 그 사람이 희귀병을 고칠 확률이 높습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문제를 더 쉽게 해결해줍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돈이 주는 매력에 빨려들어 갑니다. 그리고 그 돈은 하나님보다 더 많은 경우 실망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되니까요. 그래서 시쳇말로 “뭐니 뭐니해도 머니가 최고야!”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세상에서는 진리로 통합니다. 그것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유하고자 하는 욕구가 인간들의 거짓자아를 만들어 내는 주범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는 거지 나사로와 부자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자신의 삶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했으나 늘 배가 고팠지요. 이 두사람의 삶 중에서 여러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요? ‘부자로 살다가 천국에 가고 싶다!’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지요. 거지 나사로의 삶이 부러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에게서 발견되는 문제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모든 것을 돈으로 포장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입은 화려한 옷과 그가 먹은 산해진미는 돈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니까요. 로버트 멀홀랜드는 소유를 통해 형성되는 거짓자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거짓자아 소유욕의 강한 본성은 우리의 두려움 및 보호본능과 잘 엮여 있다. 재산은 거짓자아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거짓자아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간주된다. 재산은 물질적인 안정을 상실할 경우에 대비한 방어책인 동시에, 우리의 현상유지를 위협하는 것으로부터 거짓자아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조종하는 매우 중요한 자산일 수 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소중한 자산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누리지 못하는 것, 앞으로 누리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사람까지 생겨납니다. 그것은 그 분이 자신이 아닌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자신으로 착각하고 산 것입니다.

이같은 현상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범한 사람이 교회에 나오면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습니다. 거지가 들어 오면 쫒겨 나기까지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예배 안내를 담당하는 사람인데 씻지도 않고 옷도 몇 달은 그대로 입은 것 같은 노숙자 한 분이 교회를 찾았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십중팔구 이렇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이곳은 신성한 예배당입니다. 당신과 같은 분이 오실 곳이 못됩니다. 먹을 것이나 돈이 필요하면 드리겠습니다.” 그러면서 쫒아내지 않을까요? 잘 차려입고 가죽성경을 손에 들고 향수를 뿌리고 헌금봉투에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들고 입장하는 다른 성도들의 예배를 방해하면 안되니까요. 그냥 솔직이 그런 분은 교회에 안왔으면 좋은거예요. 교회의 격이 떨어지는 일이거든요.

성경에서는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말이 나온 것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고 있고, 좀 더 극단적으로 말해서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내가 소유한 그것으로 나를 포장하고 그것이 마치 ‘나’인 것처럼 여기게 되고 나중에는 그것이 내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야 남들로부터 거절당하지 않거든요.

넷째, 거짓자아는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 합니다.

참 오래 전에 라디오에서 높은 뜻 숭의교회의 김동호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당세에는 김목사은 동안교회의 담임셨을 때입니다. 목사님이 소개하신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억에 의존하여 기록하니 실제 내용과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장로님이 계셨답니다. 그 분은 재력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돈이 없어 변변한 예배당 하나 갖추지 못한 교회에 대한 사정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기도를 한 끝에 그 교회를 지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장로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재산을 그회에게 헌금을 했고 그 교회는 그 헌금으로 자기 예배당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님은 헌금만하시고 그 교회를 한번도 가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이유인 즉은 자신이 그 교회에 가면 교회의 교인들이 장로님을 떠받들 것이고 또 장로님은 자신이 낸 헌금으로 그 교회를 지었으니 아무래도 간섭을 하게 될 것 같아서 헌금을 하고는 잊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간섭을 하게 될 것 같은 마음…이 마음을 바로 누군가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자기 만족을 위해 남을 조종하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자신의 마음에 들게 하기 위해 조종을 합니다. 힘으로 조종하고, 돈으로 조종하고, 권위로 조종을 하지요. 그러면 소위 ‘착한 아이들’은 부모의 눈에 쏙드는 일만합니다. 부모가 보기에 너무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부모가 조종하는 만큼 아이들은 부모에게 자신을 맞추려고 하는 강한 욕구가 나오게 되고 점점 부모에 순응하게됩니다. 우리는 그런 아이들을 ‘착한 아이’로 규정을 합니다. 그런데 이 착한 아이가 청소년기로 접어들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면서 점점 부모로부터 벗어납니다. 거짓자아를 벗는 과정이고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지요. 청소년기에 그런 현상이 뚜렷이 나타납니다. 그러면 부모는 너무 힘든 거예요. 아이가 갑자가 말을 듣지 않는거예요.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통제가 되고 조종이 되어야 할텐데 그동안 로보트처럼 애완견처럼 말 잘듣던 아이가 돌변하니 어떻겠어요. 그 때가 가장 중요할 때입니다. 그때 조차 엄격하게 통제를 하게 되면 아이는 참자아를 만드는 데 실패를 하게 되고 평생동안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하게 만듭니다.

교회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통합니다. 제일 쉬운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하기 싫은 일도 해야하고 자신의 모습과는 다른 표정도 지어야 하지요. 교회에서도 계급을 만들어 남들을 조종하려 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 합니다. 목사의 정체성, 장로의 정체성, 집사의 정체성이 있는 것이죠. 다른말로, ‘목사는 이래야 한다. 장로는 이래야 한다. 집사는 이래야 한다.’ 라는 말이 암묵적으로 통합니다. 직분에 따라 도덕적인 수준, 삶의 방식이 완전히 달라야 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높은 수준의 영성을 부여받은 직분자들은 그렇지 못한 분들 위에서서 그들을 조종하려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이라는 미명아레 순종을 강요하지요. 이렇게 남들을 조종하고 통제하려는 경향 때문에 사도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투기”가 나타난다 말한 것입니다.

인간들은 누구나 영향력을 갖기를 원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기를 원합니다. 겸손해지고 낮아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저 같이 성경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특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지요. 말씀으로 사람들을 조종하고 두려움을 주고 무조건적으로 복종하게 만들면 안되는 거잖아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것을 진짜 신앙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결국에는 교회와 사회에서의 삶이 다른 이중인격자를 양산하게 되지요. 특히 교회내에서 맹신자들을 만드는 것이 문제입니다. 완전히 자신이 사라진…자신이 가짜 신앙에 의해 온전히 만들어진 그런 자기 자신이 사라진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불과 얼마 전 마크 리퍼트 주한미대사가 한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불리우는 사람에게 끔찍한 공격을 당했습니다.  다행히 리퍼트 대사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수술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한국사회가 칼에 맞는 사람처럼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강한 수압을 겨우 버티고 있던 둑이 작은 구멍으로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정치인들이야 늘 침소봉대하고 모든 사안을 아전인수로 해석하여 왔고, 사건을 교묘히 이용하여 왔으니 호들갑을 떠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 뉴스에 등장안 기독교 단체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한 개신교 단체에서 리버트 대사 쾌유를 위한 집회를 열고 절을 하고 부채춤과 난타 공연까지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을 벌였습니다.  여기에는 한복을 잘차려 입은 여신도들이 등장했습니다. 이같은 일은 우리가 웃고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 ‘그들이 한복을 입고 나와 그 광장에서 부채춤을 추고 난타공연을 벌이는 것이 과연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가능한 것인가?’하는 것이지요. 누군가가 그들을 조종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거짓자아에 의해 조종당한 거짓자아는 비이성적이고 터무니 없는 일들까지 자행하게 만듭니다. 물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이지요.

다섯째, 거짓자아는 파과적인 자아입니다.

거짓자아는 결국 자신을 파괴하고 가족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가장 먼저 파괴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앙심으로 하나님과 건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고 봉사를 하고 성경공부를 하기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 앞에 참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을 하지요. 그런데 그런 행위들은 아주 극명하게 다른 두 자아의 모습이 노출되는 것입니다.  첫째, 거짓자아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입니다. 이 경우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임없이 그러한 종교적 행위를 통해 확인하려 합니다. 그것이 교회활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일종의 종교중독이지요. 자신이 남들에 비해 신앙적으로 우월하게 보이기도 하지요. 이를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거짓자아와는 반대의 경우로 내면에 있는 참 자아가 활동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에 의해 인도를 받는 삶이지요. 이 경우 진리에 대한 열정, 갈구함 때문에 하나님의 임재 앞에 자신의 참된 자아를 드러냅니다. 자신이 민낯이 노출되는 부끄러움과 아픔이 뒤따를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등장하는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입니다. 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건전하고 올바로 되어 있었지요? 바리새인입니까? 아니면 세리입니까? 성경은 세리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의 거짓자아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 참된 나 사이의 관계를 파괴하고 그 사이를 종교적 행위로 채워 놓는 것이지요. 이러한 관계의 파괴야 말로 가장 근본적인 파괴이고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거짓자아는 나를 파괴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된 나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기 때문에 내 뜻을 하나님의 뜻인 냥 착각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그랬습니다. 그는 스데반에 돌에 맞아 죽는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고도 그가 당연히 죽을 죄를 지었고 그 죽음은 타당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것에 대해 증인이 되기도 하였지요. 중독에 빠지는 경우, 외도를 하는 것, 우울증, 비통과 분노 등을 우리의 영혼이 파괴되는 대표적인 증거들입니다. 요즈음 한국에서 간통죄가 폐지 되었다고 하니까 콘돔 만드는 회사의 주가가 상한가를 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파괴하고 세상적인 것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그 또한 자기파괴의 한면을 보여준 것입니다. 실제로 거짓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작년 (2014년) 10월말 인천에서 부부와 그의 딸 등 일가족 세명이 자살한 사건이 있어 사회의 큰 충격을 준 적이 있습니다. 이들은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을하였는데 나중에 수사과정에서 밝혀진 사실은 듣는 이의 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들은 서울과 인천에 15채의 집을 보유하였고 가장인 남편은 월급장이로 경제적으로는 표면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가정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출에 대출을 얹어 집을 사고 그 집이 부동산 경기침체로 인해 팔리지 않아 자금회전이 안되는 악순환을 겪으면서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경찰은 밝혔습니다. 이들은 부동산 부자라는 것,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들이라는 착각 하에 살아왔고 그것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것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님이 드러나자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가 자신의 정체성을 거짓된 것으로 채우면 자시 스스로를 파괴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거짓자아는 자신 뿐 아니라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타인을 같은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고 거짓자아를 충족시켜주는 대상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타인이 자신의 욕구를 중촉해 주지 못하면 그를 비난하고 관계를 단절하고 심지어 해꼬지를 하기까지 합니다. 이에 대해 로버트 멀홀랜드는 이렇게 진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계획대로 새상을 조종하려 할 때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거짓자아의 장기판에서 졸 노릇을 하게 된다. 사람들의 가치는 주로 그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유익에 비례한다. 그 가치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그들은 버림 받게 된다. 어쩌면 당신은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는 환대와 배려와 존중으로 대하는 관계 속에서 따뜻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기대 역할이 끝났을 때, 당신은 해고통지를 받을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사람 너무 믿지 마세요. 좋을 때는 간 쓸개 다 빼 줄 것처럼 하다가도 돌아서면 끝인 것이 사람입니다.” 맞지요. 이것이 사람이니까요. 그걸 아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런데도 또 매달리고 의지하게 되잖아요. 이 사람을 떠나면 다른 사람에게 또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로버트 멀홀랜드 박사가 말하는 것은 이런 거짓자아에 매달리지 말고 참자아를 찾아서 스스로 홀로서는 방법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조정하려고 하지 말고 조종당하지도 말고 말이지요. 교회도 공동체를 파괴하는 아주 잘못된 것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에만 나가면 우리는 사탄이라는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들의 행위를 사탄의 조종을 받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눕니다. 성도들은 아주 쉽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실제로 이런 설교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고 골프장에 가는 것은 사탄의 조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사탄이 그를 조종한다는 증거이지요.” 물론 그것뿐 아니라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새벽기도를 나오지 않으면, 성경을 읽지 않으면 모든 것이 사탄의 장난에 놀아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냥 모든 신앙생활은 사탄의 일과 하나님의 일로 양분되고 마는 것이지요. 이렇게 양분해 놓으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하나님의 뜻 아래 있다고 여기는 분들이 사탄의 조종을 받는다고 하는 분들을 비난하고 판단하고 심판하지요. 이것 또한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용서와 화해 그리고 서로 용납하는 것은 드믈고 늘 남을 향해 비판하고 수군거리고 정죄라고 심지어 심판대에 올리기까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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