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
March 26, 2015 | by B2B Missions
제자훈련시리즈[3] 제 5 강 어떤 것들이 거짓자아를 만들어 내는가?[2] (거짓자아의 이면)–두번째

잘못된 충동 4: 나는 충족되었나? (Am I fulfilled?)

허전한 마음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마음이 허전하다는 느낌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허전함을 채우는 방법은 인간마다 각각 다른 것 같습니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쉽게 그 허전함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 오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언가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자신들의 빈 공간을 메우는 오락이나 취미 정도로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특히 중년 여성들이 뒤늦게 도박이나, 술이나, 쇼핑이나, 심지어 종교에 이르기까지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을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그동안 열심히 매달렸던 그래서 자신의 삶을 잊게 만들었던 그 무언가가 있었고 그것이 갑자기 자신 앞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중독에 빠진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이 중독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중독이 무엇일까요? 특정한 것이 충족되지 못했을 때 불안과 초조가 찾아 오고 그것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안정을 찾는다면 그것이 바로 중독입니다.

불안과 초조, 허전함이 반드시 중독을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어떤 것을 탐닉하는 대신 끊임없이 자기 자신 안으로 자기를 가두어 버리려 합니다. 도대체 내가 살아 있는 이유를 모르겠고, 어떤 것도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취미라도 하나 가지라고 권하지만 그것도 일시적일 뿐 이내 놓아 버리게 됩니다. 낮에는 내내 무기력하게 소파에 드러 누어 잠을 잡니다. 하지만 밤이면 전혀 잠이 오지 않아 안절부절하게 되고 꼬박 밤을 지세우기도 합니다. 무엇인지 모를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을 때가 있습니다. 심지어 삶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증세들이 나타날 때 우리는 우울증이라고 진단을 합니다.

우울증과 중독은 거의 유사한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뇌신경 전달물질이나 호르몬 분비의 불균형 등 생화학적인 문제나 유전적인 문제도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생화학적, 유전적 이상의 경우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단순한 상담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많은 대부분의 경우 원인을 알면 쉽게 해결되는 것들이다. 마치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낫는 병도 있지만 간단하게 처방한 약을 복용함으로서 회복가능한 것들도 있는 것이지요. 어쩌면 인간들이 느끼는 대부분의 중독이나 우울현상은 간단한 노력만으로도 해결 가능한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상실이나 거절 등을 경험함으로써 출발합니다. 인생에 있어 상실과 거절은 일상적인 것입니다. 나에게만 특별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갈증들

중독, 우울증, 공허감, 불안, 초조 등의 문제의 이면에는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갈증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위에서 열거한 문제들은 아주 비정상적인 사람들, 남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담의 후예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 가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솔직이 말해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맞는 말입니다. 목사들도, 심지어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앞에 나열한 문제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100명 정도의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목사님은 200명 정도의 더 큰 교회를 꿈꾸게 됩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흔히 겪는 일인데 많은 목사님들이 자신들의 교회가 너무 부흥이 되지 않는 것으로 고민을 많이 합니다. 남들보다 더 큰 목회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또 어떤 목사님들은 한국의 큰 교회에 청빙되어 가는 목사들을 보고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더 좋은 기회가 생기면 그동안 섬겨 왔던 미국 이민교회 떠나 한국으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는 마치 직장인들이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요즈음 이혼이 늘어나는 이유도 다 배우자가 자신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충족하지 못하는 삶의 전형을 보여 주는 한 여인이 있습니다. 바로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우물가의 여인의 후예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우물가의 여인이 보여준 삶의 여정은 만족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전형을 보여줍니다. 우물가라는 것이 목마름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주는 장소이기도 하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이야기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아도 그러합니다. 이처럼 목마름, 갈증은 누구에게나 있는 현상입니다.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이야기 할 때에도 목마르다고 표현을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물을 길러 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을 한잔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이 여인의 대화를 잘 살펴보면 이상한 장면이 너무 많이 발견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요4:9).

이 여인은 그냥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을 떠 주면 그만인데 자신과 예수님의 정체성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그의 말에는 자신의 출신에 대한 열등감, 그리고 그동안 받아 왔던 차별과 거절에 대한 상처가 고스란이 담겨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의 원인을 다른 것으로부터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여인은 유대와 갈릴리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 여인으로 태어나 늘 민족적인 정체성의 혼란을 겪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물과 갈증이라는 은유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어지는 대화는 읽는 사람들을 좀 더 혼란그럽게 만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작 목마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고 그 여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단순히 갈증을 해갈시키는 목마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에 대한 사마리아 여인의 대답에서 우리는 그가 그동안 떠 먹었던 물이 어떤 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 4:11).

이 여인의 말을 유추해보면 이 여인은 그릇이 없어서 우물 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정말 시원한 물을 먹은 적이 없습니다. 늘 우물의 표층에 있는 미지근한 물만 마셔 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깊은 곳에 있는 생수를 떠 먹을 그릇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하고 싶어도 못했다는 이야기이지요. 자신이 가능하기만 했어도 그 시원한 물을 떠 마셨을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물을 마셔 왔다고 갈증이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더 시원한 물, 좀 더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할 수 있는 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좀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물을 길러 오지 않고 싶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예수님의 대답은 전혀 엉뚱합니다. 만약 일반 사람이 들으면 예수님을 전혀 비 논리적인 사람으로 폄하할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갑자기 생수에서 그녀의 남편이야기로 넘어 갑니다. 예수님은 갑자기 그 여인에게 남편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아니 생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남편 이야기는 왜 꺼내신 것일까요? 예수님은 진정한 목마름의 원인이 깊은 곳에 있는 생수를 먹지 못해 생기는 것이 아니고 자기 만족을 모르는 여인에게 있음을 지적하려 하시는 것이지요. 여인은 자기의 남편이 없다고 합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있는 남편도 진짜 남편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당시나 지금이나 부부는 상호 의존성이 매우 강한 존재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하며 사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아내가 남편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여자는 아마도 수 많은 남자들로부터 거절을 당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 이혼을 결정하는 권한이 남자에게만 있었습니다. 그런 배경을 놓고 생각을 해보면 이 여인은 다섯번이나 남자로부터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사마리아 출신이라는 열등감도 그를 지배했습니다. 그의 삶의 굴곡 배경은 스스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의 수치심을 그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성경은 그녀의 상태를 ‘목마름’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목마름

‘목이 마르다’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다른 곳은 허전합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겉치례라도 하지만 여전히 그의 내면에 흐르는 갈등마져 숨길 수는 없습니다. 멋진 고급 스포츠에 심취해 보기도 하고, 명품에 매달려 보기도 합니다. 명예를 얻기 위해 명예를 가진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노력을 하고 외형상으로는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 봅니다. 늘 자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거론하며 자신과 동료임을 은근히 과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러한 사람임을 간접적으로 과시를 합니다.

반대로 자신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철저하게 피합니다. 우물가의 여인이 남들이 다 나오지 않는 정오에 홀로 우물가에 온 것 처럼 말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프로그램, 저 프로그램 다 들어 보아도 만족이 없습니다. 강한 체험을 갈구합니다. 그리고 그 체험이 마치 자기 것인 냥 위장하기도 하고 그것을 과시하기도 합니다. 내면에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 보다는 외형상 보여주는 체험에 치중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들이 그것을 알아 주지 않을 때 이내 다른 것으로 보여 주려고 애를 씁니다. 헛된 수고, 마치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계속적인 탐닉을 하게 허전한 마음만이 그의 삶을 지배합니다.

헛되고 헛되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부와 지혜와 권력을 누린 왕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솔로몬 왕이라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다윗왕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나 아들들 중 왕이 될 수 있는 확율이 가장 낮은 인물 중의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아들들 간의 왕위다툼 과정에서 형들이 하나 둘 그 자리에서 탈락하면서 사실상 어부지리로 왕이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철저한 게획 아래 그가 왕이 되었지만 객관적인 상황 만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이복형 압살롬처럼 왕이 되기 위해 철저하게 계산을 하고 사람을 모으고 정치적으로 활동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윗왕은 그를 왕으로 지명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솔로몬은 정치적으로 정적들을 제거하고 왕권을 공고히 합니다. 그리고 영토를 확장을 하고, 궁전을 짓고, 솔로몬 성전이라 명명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합니다. 수많은 재산을 모았고 후궁까지 포함할 경우 천명이나 되는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잠언을 지어 후손들을 가르쳤습니다. 무엇하나 부족할 것이 없는 왕이 바로 솔로몬 왕입니다. 그런데 그가 의외로 이런 말을 합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구부러진 것을 곧게 할 수 없고 이지러진 것을 셀 수 없도다…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 (전1:2-18).

전도자 솔로몬 왕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앞에서 이야기한 네 가지 잘못된 충동을 지닌 채 삶을 살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수고를 통해 전혀 목적한 바를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흐르는 강물로는 바다를 채우지 못합니다. 보기는 보아도 눈으로 보이는 것을 그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고, 듣기는 들어도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주지 못합니다. 남편의 않 좋은 버릇을 고쳐 보려고 하고 아내의 단점을 늘 지적도 해봅니다. 아이들에게 훈계도 해보고, 사회를 개혁하고, 교회의 안좋은 면들을 지적하고 고쳐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헛된 일입니다. 인간이 어찌 구부러진 것을 온전히 고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해 보나 그것 또한 번뇌만을 가져다 줄 뿐입니다.

솔로몬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우리가 해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헛된 것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 앞에 내려 놓으라는 것은 바로 이 헛된 일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죄책감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무엇에 몰입하는 것, 열등감과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자신을 치장하고 탐닉하는 것,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버리기 위해 자학하고 절규하는 삶, 무언가를 올바로 고쳐 보고자 하는 열정, 마음을 흐트러 뜨리는 조바심 초조함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안달하는 마음들은 모두가 열매 없는 수고일 뿐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 많은 방법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오히려 다른 문제만 더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음의 H권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해 보았으면 합니다.

H권사님 이야기

미국 켈리포니아에 사는 한 권사님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H 권사님의 남편은 최근 자기 아내가 너무 교회 일에만 매달려서 걱정입니다. 집안 일이라고는 돌보지 않아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항의를 한적도 있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H 권사님은 아이들이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와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아이 둘을 키웠습니다. 두 아이는 H 권사님의 기대 대로 모두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였하게 되어 미국 동부로 떠나갔습니다. 문제는 그 때부터였습니다.  남편은 아이들 둘 학비마련하랴 집안 재정을 돌보랴 거의 얼굴을 보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 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이 둘이 대학을 들어가 집을 떠나도 자신의 삶이 그렇게 크게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내인 H 권사님은 달랐습니다. 갑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사라진 것입니다. 아이들 등하교를 도와 줄 일도 없고, 대학 문제로 이리저리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학원에 나갈 일도 없어졌습니다.  H 권사님에게 알 수 없는 공허감이 몰려 왔습니다. 마음 전체가 텅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들과 전화통화를 해보지만 아이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이내 전화를 끊어 버립니다. 그런 아이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밤이면 도통 잠이 오지 않습니다. 늘 힘이 없고, 까닭없이 먼 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짓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늦게 집에 온 남편은 삶에 지쳐서 그런지 아내의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 TV를 잠시 보다가 잠이 들어 버립니다. 남편이 참으로 야속했습니다. 갑자기 남편이라는 존재가 너무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너무 억눌려 산 것 같아 자신의 삶이 너무 한심하고 가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한인 기독교 방송을 청취하다가 어느 큰 교회에서 ‘회복사역’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말 회복이 필요한 존재 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의논을 한 후 회복사역에 등록을 하였습니다. 총 8주간의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그동안 삶을 돌아보며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너무도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 권사님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왜 아이들에게 그렇게 집착을 했는지, 그리고 아이들이 자신을 떠난 후 몰려온 공허감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일시적으로 삶에 안정감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을 보아도 남편이 너무 고맙고 감사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삶을 되찾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그 회복사역이라는 약의 효과가 오래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다시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교회에 다녀 오면 마음 속에 무언가가 채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리 저리 교회의 다른 권사님들 집사님들과 어울려 집회란 집회는 거의 모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신앙이 좋은 권시님으로 칭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제 남편도 못말리는 종교중독에 빠져 든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의 빈 자리를 종교가 매운 것이지요.

여전히 충족되지 않는 욕구

주위에는 H 권사님 같은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그것을 신앙심이나 성령님의 인도로 착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공허함을 메우고 이내 사라져 다시 그것을 찾게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은 교회 프로그램에 참석을 하든 안하든 동일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집회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분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종교 중독에 빠지면, 교회의 어떤 프로그램에 자신을 의존해 버립니다. 그 프로그램이 없는 동안에는 다른 프로그램, 집회 등으로 그 자리를 메우려 하는 것이지요. 어떤 이들은 종교 중독은 그래도 건전한 중독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그 종교중독 또한 도박중독, 성중독, 마약중독과 같이 매우 위험한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충분히 만족할 수 없는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욕심, 어느 정도의 중독, 어느 정도의 허전함, 어느 정도의 우울함 등은 늘 있는 일이고 누구에게나 찾아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나침이 문제입니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말이 있습니다. 무엇이든 치우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내면의 안정을 잡아 주는 추가 기울기 시작하면 들어 있던 내용물이 쏟아져 버리고 그 자리가 텅 비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면 인간들은 누구나 그 빈자리를 무언가로 채우려 합니다. 그것이 늘 허기짐, 갈증을 느끼는 원인이 되고,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것을 채우려는 노력들이 결국은 삶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내 안에 있는 좋지 못한 충동들에 대해 알아 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여야 이 문제들 해결할 것인가? 그런 좋지 못한 충동들을 내 안에서 제거하고 그 안을 정말 성령님의 열매가 맺히는 공간으로 메울 것인가의 문제는 다루지 않았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글을 읽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자신 안에 무언가 좋이 못한 씨앗이 심겨져 있어 삶을 살아가는 동안 불쑥불쑥 밖으로 튀어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로 인해 힘들어 할 때 그 원인을 알고 그 뿌리를 제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B2BM]

Comments are closed
단체명: B2B Missions    특수법인 고유번호: 603-82-69556
대표: Chang, Kevin Wooseung    주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53, 8층 855호    전화: +82 2-702-1491
B2B Missions © 2016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