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risees-2
April 5, 2015 | by B2B Missions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1]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전통 (막7:1) (마가복음 19)-첫번째

마가복음 7장 1절~23절은 유대주의자들 그중에서도 바리새파와 예수님이 ‘정결의 문제’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한 대표적인 사건을 다룬 이야기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님을 찾아 왔다가 제자들 몇 명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본 것이 원인이 된 사건을 비교적 소상하게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잘 살펴보면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대상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이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시간의 발단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입니다 (7:1~13). 다음으로는 제자들을 포함한 그곳에 모인 전체 무리들을 향한 율법의 정신에 대한 선포이고(7:14~16), 마지막으로 제자들에 국한 하여 자신이 선포한 말을 상세하게 가르치는 부분입니다 (7:17~23).

이 이야기는 마가복음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하나님의 율법’이 의미하는 정신을 가르치는 부분이므로 될 수 있는데로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가르치시고자 하는 내용을 온전히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마가복음은 사복음서 중에 가장 짦고 간결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단 몇 가지 사건으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늘의 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건의 발단: 예루살렘에서 사람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7:1~4)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같은 이 문장 안에는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이슈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 문제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고 넘어가야 저자인 마가가 이 사건을 이렇게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유대주의

첫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님께 모여 들었습니다. 아무 이상할 것도 없는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말은 초대교회 당시에는 그 의미가 매우 컸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유대주의의 산실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결국 이 유대주의자들의 눈에 벗어나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서 유대주의란 율법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들이 율법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뜻, 즉 율법의 정신과는 무관하게 율법의 행위를 일일히 규정하여 지키려고 했던 당시 유대인들의 이념을 말합니다. 유대주의란 단순히 종교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사회 전반을 지배했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현상이었으며 일종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직후 베드로의 설교로 예루살렘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아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사실이며 그가 메시아였다는 사실이지 그들이 모든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유대주의가 사라진 것이 이라는 것이지요.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유대주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믿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당국자들과의 갈등은 그들이 죽인 예수를 부활했다고 전하고 있고 그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메시아라고 전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인가?’ 즉 예수님을 보는 관점대한 문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서 자신들이 지켜왔던 전통을 버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자신들이 생각했던 종교의식은 버리지 않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일어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뿔불이 흩어지게 되었으며, 복음이 사마리아를 거쳐 이방인들까지 예수님을 믿게되면서 초대교회에 유대주의에 대한 논쟁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의 일원이 되자 유대인들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를 놓고 서로 의견이 나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유대인들 처럼 할례를 받고 유대인들이 지키는 각종 전통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이방인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급기야 당시 초대교회의 중심축 역할을 했던 예루살렘교회에서 공회가 열리게 됩니다 (A.D. 49 or 50). 예루살렘 공회에서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이방인의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 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행15:19-21).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루살렘공회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 의견에 동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 국한된 문제이지 유대인 그리스도들은 여전히 모세율법을 나름대로 해석한 조상들의 전통을 그대로 지켰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유대주의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유대주의를 그대로 고수하면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한 사건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기록된 그 사건을 읽어 보면 오늘의 본문인 마가복음7장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갈 2:11-14).

여기서 주의해서 읽어야 할 점은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라는 표현입니다. 당시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였고,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먹다가 자리를 피할 정도로 예루살렘교회는 유대주의자들이 지배를 하고 있었으며 야고보도 그 영향아래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사람들 또는 야고보로부터 온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예수님 당시에는 예수님의 반대편에 있는 유대주의자들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초대교회가 형성된 이후에는 유대주의를 그대로 고수하는 그리스도인들로 이해되었습니다.

당시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로마에 있었고 로마 또한 다른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주의자들과 갈등이 심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음식에 관한 문제로 인해, 어떤 이들은 절기에 관한 문제들로 인해 교회내에서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이 두 그룹간의 갈등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2-6).

유대주의의 핵심가치: 의와 정결 (옳음과 깨끗함)

본문 7장 2절을 보면 “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씻지아니한 손을 부정한 손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부정하다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왜 문제가 되었을까요?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이 추구하는 가치를 크게 두가지 기준으로 구분하였습니다. 한가지는 행위를 평가하는 기준은 ‘의로움’ 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깨끗함’이었습니다. 의로움, 옳음은 ‘행위’를 규정하는 것이고 깨끗함, 정함은 ‘상태’를 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둘 모두 죄를 정하는 기준이 되었지요.

예를들어, 문둥병자는 그들의 행위가 아무리 옳고 행위로는 아무런 죄를 짓지 않아도 그들의 상태가 부정하므로 회중에 들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부정한 자들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마가복음 7장 24절~30절사이의 기록에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이방여인(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막 7:27).

여기서 예수님은 이방인을 ‘개’라고 부르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들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 그러신 것은 아닙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세계관을 그대로 표현하시면서 그렇게 부정하게 여기는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면 정하게 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지요. [이 이야기는 이후에 좀 더 상세하게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율법이 지니는 핵심가치, 즉 깨끗함과 의로움이 하나님의 심판의 근거가 됨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1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1:18).

여기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심판 기준을 말씀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기준은 단순히 행위의 옳고 그름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태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아무리 선한 삶을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통치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은 거룩하지 못하며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다시 마가복음 본문으로 돌아가 7장 3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3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 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외에도 여러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막 7:3-4).

이들은 율법의 정신, 즉 ‘의로움과 깨끗함의 문제를 어떻게 삶속에서 적용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 하나 실제 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내용들을 정하였습니다. 그들이 정한 그것을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이 정한 장로들의 유전이라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일상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해 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이 세칙들을 어기는 것이 곧 율법을 어기는 것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점점 세칙에 매달리게 되고 그것으로 행위와 상태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유대인들은 밖으로 보이는 것이 촛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물로 씻러 청결하게 하는 것을 곧 정한 것, 깨끗한 것, 거룩한 것으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보여지는 사람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규제하고 그것으로 판단하였던 것이지요. 마가복음은 이를 ‘장로들의 유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이라는 말은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조상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 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일일이 세칙으로 규정하여 가르치고 감시하고 그것을 자신들의 문화로 정착시켜 왔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사사건건 대립한 것은 모세의 율법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들이 만들어 낸 제도들이었습니다.

이는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는 갈라디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자신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3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14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갈 1:13-14).

사도바울은 자신이 교회를 핍박한 것 그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조상의 유전’에 대해 더욱 열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조상의 유전이 바로 마가복음에서 말한 ‘장로들의 유전’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직접 모세를 통해 주신 그 율법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기 위해 인간들이 만들어 낸 세칙들입니다. 사도바울은 그 세칙 하나하나를 온전히 준수하면 그것이 곧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가치를 기반으로 이 땅에 세워졌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활동은 ‘이 땅에 있는 동안 그 ‘사랑’이라는 심오한 가치를 어떻게 구현해 내느냐?’를 기준으로 해야하지요. 그런데 많은 경우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라는 기본적인 정신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지배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고, 그 질문에 ‘예배’라는 답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예배에 형식을 집어 넣기 시작하였고 그 형식화된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확인하려고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일주일에 한번 일정한 형식에 따라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된 것 같고 그렇지 못하면 무언가 찜찜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구체적인 정신은 그런 형식을 통해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지요. 하지만 그런 시간, 공간, 형식에 매어 그것으로 자신은 물론 타인의 신앙상태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어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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