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린 가나안 여인
April 13, 2015 | by B2B Missions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1] 예수님의 막말—이방인이 개라고? (막7:24~30) (마가복음 20)-첫번째

성경을 읽다보면 우리들이 읽기에도 거북하고 민망이야기가 가끔 등장합니다. 인간인 우리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나 대화, 또는 일방적 선포 등을 말합니다. 특히, 인간의 도덕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들이 나올 때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당시의 세계관으로 돌아가 당시 독자의 눈으로 성경을 읽더라도 ‘개’라는 표현까지 굳이 써가며 무언가를 가르칠 필요가 있었는가? 그것도 제3자가 아닌 앞에 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한 여인에게 예수님이 그런 언어를 쓰신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요즈음 말로 막말 아닌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표현하신 ‘개’라는 단어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라고 외친 것보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더 심한 표현으로 들립니다. 이 여인은 아무 죄없는 약자이자 더러운 귀신때문에  고생하는 딸 아이를 둔 한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독설가가 아닌 이상 왜 이 여인의 가슴에 못박는 말을 던지셨을까요?

이야기가 여기에 들어 있을까?

계속해서 언급해왔지만 복음서는 어떤 단일 사건을 통해 메시지를 다르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큰 주제 하나를 여러 사건과 가르침을 통해 설명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번째는 앞의 이야기 즉, 청결함과 더러움의 문제, 즉 거룩의 의미를 좀더 확대하여 가르치고자 한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이 방문하신 곳이 이방 땅이고, 그곳에서 이방여인을 만났고, 그 여인의 딸은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는 점에서 이 주장은 설득력을 있다고 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사역지가 이방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합니다. 그동안 주로 유대땅 갈릴리 지역에서 사역을 하시던 예수님이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지만 이방 땅인 두로지방으로 오시게 되었고 그곳에서도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역을 하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후에도 시돈과 데가볼리를 다니시며 사역을 하셨고, 빵 일곱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사천명를 먹인 사건도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R.T, Fance, The Gospel of Mark (NIGTC), pp 294-295참조).

물론 이 이야기를 이방인 사역의 시작점으로 보느냐? 아니면 거룩함의 의미를 가르치고자 하는 연장선이냐? 중 하나님의 관점을 택하여 볼 수도 있지만 두개의 주제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즉,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더러움의 의미를 먹을 때 몸을 깨끗하게 해야 하느냐?의 문제에서 좀더 확대하여 그렇다면 진정으로 더러운 존재는 누구인가?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이방인 전도로 확대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연결고리로 이해한다면 이 사건은 마가복음 뿐 아니라 전체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가져다 주는 사건으로 보아야 하며, 사도행전 10장에서의 베드로가 고넬료를 전도한 사건에 견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고넬료에거 나타나서 당시 욥바에 머물고 있던 배드로를 청하라고 합니다. 물론 베드로에게도 활홀한 중에 환상을 보여줍니다. 당세 베드로에게 먹으라고 한 그 음식들은 유대인들은 먹을 수 없는 더러운 것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9절부터 16절을 보겠습니다.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행10:9-16).

베드로가 본 이 환상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대인 공동체에만 전파되던 복음이 이방인에게 넘어갔고, 그 계기가 바로 ‘성스러운 것’에 대한 세계관의 변화에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두로지방과 시돈지방으로 여행을 하시면서 전도를 하시고 이적을 행하신 것은 바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확장되는 것이 사도들로부터 시작된 사역이 아닌 예수님 공생애 사역에 포함된 일이었음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성과 속의 벽을 허물다

유대주의자들은 [특히, 바리새인들은] 더러운 것과 깨끗한 것은 장소, 물건이나 동물, 시간, 그리고 사람들에 따라 엄격히 구분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정결한 사람도 시장을 다녀 오면 몸을 반드시 씻어야 했습니다. 시장이 누구나 모이는 장소이다 보니 그곳에서 더러운 것과 접촉했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지요. 장소는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 – 성소 – 성전 – 예루살렘 – 유대땅 – 이방땅 순으로 거룩함의 정도가 다르다고 보았고, 또 지역별로 더러운 곳과 깨끗한 곳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물건이나 음식 동식물 등도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이 구별되어 있음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시간은 이들의 안식일, 축제일 등은 특별히 다른 날보다 거룩한 날이었고, 낮은 밤보다 거룩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방인 보다는 유대인이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정결한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문둥병이나 유출병에 걸린 사람은 그 사람의 신분과 상관없이 부정한 존재로 여겨졌고, 생리를 하는 여자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달에 한 번씩은 부정하게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예수님이 계신 곳이 이방 땅 (두로)이고, 이방인의 집이었으며, 만난 사람은 이방인 그 중에서도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여인은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여자 아이를 딸로 두고 있었지요. 이 여인은 ‘정결하지 못함’의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불결함’ 그 자체였지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갑자기 두로라는 이방 땅으로 가셔서 이 여인과 만나게 되었을까요? 이 문제를 단순히 ‘더러운 영’에 사로 잡힌 한 어린 여자아이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덕분에 나음을 얻은 사건으로 국한해서 보는 것이 타당할까요?

마가복음 7장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사회문화적 정체성과도 같은 성과 속의 경계를 다루는 아주 중요한 장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유대사회 내에서 사역을 통해 유대주의의 벽을 하나 둘 허물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방땅과 이방인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사역은 초대교회사에 가장 큰 화두였습니다. 사도바울을 필두로하여 복음이 이방에 미치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성과 속’에 대한 세계관을 주입시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이같은 유대인들의 획책에 반대하여 기록한 대표적인 서신이 갈라디아서입니다. 이외에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골로새서 등 곳곳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얼마나 자신들이 생각하는 성과 속의 문제를 교회로 끌고 들어와 그것을 일반화하려 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간 사도바울이 교회내의 유대주의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서 14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롬 14:1-3)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롬14:5-6).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롬 14:14).

사실 로마서 14장은 전체가 음식과 시간 등을 ‘성과 속’의 개념으로 이해하려는 유대인들과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이방인들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로마서가 주후 57년경에 쓰였다는 점에서 초대교회가 형성된지 25년이 지난 시점에도 초대교회의 가장 큰 화두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간의 종교적 세계관의 차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이 뿌리 깊은 ‘성과 속’의 문제를 다루셨고 그중 대표적인 것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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