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possessed man
February 14, 2015 | by B2B Missions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 1] 예수님은 퇴마사인가? (마가복음 11)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 1] 예수님은 퇴마사인가? (1:21~28)

[ 1] 복음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마가복음 11)

성경의 복음서에는 유난히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예수님이 그 귀신들을 쫒아 낸 사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도 예수님이 귀신을 몰아낸 사건이 네 번에 걸쳐 기록되어 있고 (1장, 5장, 7장, 9장), 그것도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복음서의 이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보고 요즈음도 병이 들거나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귀신이 들렸다고 생각을 하고 교회를 찾아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귀신을 쫒아내는 전문 사역자들이 활동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당시에 요즈음 말로 ‘퇴마사’의 일을 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이 퇴마사가 아니라면 왜 그런 일을 하셨으며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여 주고자 한 것인가요? 라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오늘은 공관복음에 주로 등장하는 귀신이야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지 말라!” 이 말은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불문율입니다. 특히, 복음서는 문자적으로 읽을 경우 해석상 많은 오류를 범하게 되고 결국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통해 계시하신 메시지를 곡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귀신이야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단순히 귀신을 쫒아내고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쫒아내는 능력을 주기 위해서 귀신을 쫓아내는 사건을 보여 주셨다면 성경을 완전히 다르게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귀신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오늘의 본문 마가복음 1장 21절~28절을 읽겠습니다. (그림 참조)

마가복음 1-21-28

위 복음서의 내용을 보시면, 일정한 틀에 맞추어 기록한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틀을 교차배열구조 (Chiastic Structure)라고 하는데 이러한 구조에서는 각 문장들이 서로 짝을 이루고 있고 각각의 짝마다 무언가 특징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짝을 설명하기에 앞서 마가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관점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앞서 충분히 다루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언급하겠습니다). 일단 마가복음의 1차 독자들은 네로황제의 폭정과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핍박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점에 로마에 거주하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핍박으로 인해 산 소망이 없어진 그들에게 예수님이 유일하신 주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영원한 천국이 있고 예수님이 오시면 이 땅에서의 고난이 그치고 영원한 천국이 임할 것임을 알려 주고자 기록한 책이 마가복음입니다. 따라서 마가복음의 모든 기록들은 당시 독자들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한번생각해 보십시요. 로마군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언제 십자가를 질지 언제 사자 밥이 될지 모르고 마음 조리고 숨어 사는 이들에게 귀신 쫒아 내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믿음의 선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 힘든 싸움의 기록들,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그 기록들이 요즈음은 일신의 안위나 무당들이나 행하는 그런 사건으로 둔갑되어 읽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까지 합니다.

최초의 독자가 되어 보는 것, 그들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는 것은 복음서 뿐 아니라 모든 성경을 읽는 아주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성경을 읽는다면 나의 현재 세계관에 몰입되어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우를 범하는 것을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읽는 두번째 중요한 관점은 인간이 아닌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제자들, 군중들,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등 예수님을 대적한 사람들이 일관되게 던지는 질문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이지요.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의 사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을 염두에 두고 오늘의 본문을 살펴 보기로 하지요.

우선 문학적인 구조를 살펴보면 교차배열구조에서 각각의 짝들이 다음과 같은 고유한 특징들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A: 지리(장소): 가버나움 회당 (21절) à 온 갈릴리 사방 (28절)

B: 군중들과 그들의 반응: 교훈, 놀람, 권위 등

C: 귀신과 귀신들린 사람: 소리를 지름

D: 예수님과 귀신의 대적: 귀신à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예수님: 귀신을 꾸짖어 사람에게서 나오게 함.

E: 예수님의 정체성: 하나님의 거룩한 자

이 에피소드는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장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가버나움의 한 회당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사건 하나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갈릴리 온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는 복음의 확장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일시에 퍼져 나중에서는 예수님이 스스로의 몸을 피하고 숨겨야 할 지경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두번째, 군중들과 그들의 반응입니다. 군중들은 시종일관 놀라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새 교훈(신약)으로 생각하였으며, 예수님이 지니는 권위를 매우 다르게 생각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이 서기관들에 비해 월등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가르쳤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구약을 재해석 하시면서 새로운 언약을 제시하였다는 의미이지요. 다음으로 귀신들린 자(또는 귀신)의 반응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귀신들린 자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의 신분이나 처지 등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세 번의 다른 사례에서는 나름대로 귀신들린 자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그의 특징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어 그를 나오게 합니다. 예수님의 꾸짖음을 당한 귀신이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라고 질문하는 것은 매우 시사점이 있습니다 (이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뒤이어 좀더 상세하게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이야기의 가장 가운데 부분에 배치된 것이 귀신의 고백 또는 선포인데 결국 귀신조차 예수님을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선언합니다. 결국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다’라고 귀신의 입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자인 마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메시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거룩한 자”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퇴마사도 아니고 그럴 목적으로 이 세상에 오시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그럴 목적이라면 이 세상의 귀신을 모두 없애버리면 될 일입니다. 그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것은 일도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하나님을 제한적으로 생각하여 예수님의 하신 그 일만 너무 촛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생각들이나 태도 때문에 기독교 자체가 왜곡되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귀신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어떤 존재이길래 단 16장인 마가복음에서 네 번씩이나 등장할까요? 오늘은 예수님 당시 팔레스틴 땅에서 인식했던 그 귀신의 정체와 성경에 등장하는 그 귀신들에 대해 좀더 상세히 알아 보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첫째, 귀신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둘째, 우리가 생각하는 귀신 즉, 한국적 귀신과 성경에 나오는 귀신이 동일한 귀신인가?입니다.

첫째, 마가복음에서 귀신의 일종으로 표현된 헬라어는 일관되게 ‘더러운 영’ (πνεῦμα ἀκάθαρτον, unclean spirit) (1장, 5장, 7장, 9장)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깨끗하지 못한 영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은 이를 ‘디몬’ (δαιμόνιον, demon)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에서는 ‘더러운 영’ 보다는 ‘디몬’아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가복음에서는 ‘더러운 디몬 영’(πνεῦμα δαιμονίου ἀκαθάρτου, unclean demon spirit) (눅4:33)이라고 길게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이를 보면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귀신은 ‘더러운 영’ 또는 ‘디몬’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더러운 영, 악령, 귀신 등에 대한 개념은 포로기 이후 급격히 등장합니다. 그러니까 포로기 이전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개념자체가 없었습니다 (예외, 사무엘 상 28장). 많은 경우 포로기를 거치면서 페르시아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을 하기도 하고 헬라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쨋든, 성경에서 귀신, 악령, 더러운 영은 구약보다는 신약시대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주목할만 합니다. 헬라문화에서 다이아모니온 (demon)은 ‘대적자’라는 의미로 어떤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의 반대편에 선 자를 말합니다. 논쟁을 벌일때 반대편에 선 상대방도 ‘다이아모니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반대세력, 기독교의 반대세력 전체를 ‘디몬’으로 볼 수 있는 것이지요. 결국 성경에 나오는 귀신의 대부분은 당시 기독교를 반대하는 세력들을 은유적으로 설명하고자 예수님께서 일부러 재자들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준 사건으로 보면 됩니다. 예수님의 반대세력들은 끝내는 예수님을 시인하고 완전히 패배하게 됩니다.

둘째, 우리 한국인이 생각하는 ‘귀신’이란 존재가 성경에 나오는 귀신과 동일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 귀신 이야기하고 실제로 귀신을 몰아 내는 사역들을 하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결론부터 말하면 성경의 악한 영과 한국의 귀신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성경은 인간이 육과 혼과 영으로 구별되어 있다고 봅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인간이 ‘육’과 ‘영혼’ 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지요. 그래서 한국에서의 귀신은 인간을 구성하는 일부가 육신과 분리된 어떤 존재를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악한 영은 인간의 영혼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에 의해 별도로 창조된 인간이 아닌 어떤 존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죽은 후 분리된 영혼을 지칭하는 귀신과는 다른 존재입니다. 결국 성경의 귀신들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 있는 모든 집단을 망라한 어떤 존재들이고 그 존재들이 구체화되어 귀신들린 자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권세 앞에서는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는 존재들이 되지요.

다시 마가복음의 최초 독자가 되어 보기고 하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대적하는 무리는 누구였을까요? 당시 독자들인 이 귀신 이야기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무리는 누구일까요?

 

Comments are closed
단체명: B2B Missions    특수법인 고유번호: 603-82-69556
대표: Chang, Kevin Wooseung    주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53, 8층 855호    전화: +82 2-702-1491
B2B Missions © 2016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