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새인들과 예수님
January 24, 2015 | by B2B Missions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 1] 복음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마가복음을 중심으로)(7)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어디서 왔는지 예수님을 대적하는 캐릭터들을 대하게 됩니다. 바리새인, 세례요한과 그의 제자들, 사두개인, 무리들, 심지어 귀신들까지…그 중에 예수님과 가장 빈번하게 갈등을 빚은 그룹이 있다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렇다면 왜 바리새인들은 사사건건 예수님과 충돌을 빚었을까요?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길래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정죄하고 비판하고 심지어 죽일 음모를 꾸미끼까지 했을까요?

바리새파의 특징

바리새파는 예수님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유대교 종파였습니다. ‘바리새’란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스스로를 율법으로 엄격하게 구별된 사람들,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현실 정치에 거리를 두면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행하고자 하는 일련의 종교적 집단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약 6000명 정도가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리새파는 다른 유대종파와 마찬가지로 멕카비 독립운동 이후 등장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 특히 구약시대에는 이런 유대종파 자체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들은 모세오경 이외에 미드라쉬를 엄격하게 실천하였습니다. 특히 자신들이 만든 규율과 그것을 실천하여 온 전통을 매우 중시하였습니다. 성경은 ‘장로들의 유전’ 또는 ‘조상들의 유전’이라고 부릅니다. 이 유전들은 책으로 정리되어 그들의 삶의 지침이 되었고 그들의 세계관을 형성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과 달리 그들은 인간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당연히 영혼은 불멸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영혼 소멸론을 믿음).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였습니다. 특히 인간세상을 통치하시고 택하신 백성을 삶속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매우 강조하였습니다. 이들은 강한 메시아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상은 당연히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 강한 정치적 메시아, 다윗왕과 같은 존재를 기다린 것이지요.

이들은 모세오경이외에 전통을 중시하고, 장로들(어른들)과 율법사들의 가르침을 계율처럼 중시하였습니다. 이들은 정치조직이나 종교지도자들이라기 보다는 평범한 시민들 중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려는 그룹으로 요즈음 표현으로는 일종의 평신도 그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적으로는 중간층에 속하며, 주로 도시에 거주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끼리 “형제집단”으로 보았고, 다른 바리새인들을 “동반자”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집단내 동료의식이 매우 강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종의 랍비학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대표적인 바리새 학파로는 매우 엄격한 율법생활을 강조하는 샴마이 (Shammai)학파와 상대적으로 관대한 율법을 적용하는 힐렐(Hillel)학파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가말리엘과 그의 제자 사도바울은 힐렐학파에 속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은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리새인들이 트집을 잡았기 때문에 이들이 만나면 늘 갈등이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입장에서 또는 우리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트러블메이커인 셈입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만 해석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배우고 믿고 적용하는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수님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을 위해 바리새인들의 세계관의 충돌은 불가피했습니다. 역설적으로 예수님은 그들과의 충돌을 통해 핵심적인 복음의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갈등은 “무엇이 옳으냐?”와 “무엇이 깨끗하냐?”의 문제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즉, 의로움의 문제와 정결함의 문제가 유대주의의 가장 핵심었다는 사실이지요. 그들은 거룩한 장소, 거룩한 시간, 거룩한 인간, 거룩한 동식물, 거룩한 행동양식이 구별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은 하나님이 정하신 거룩한 시간입니다. 인간이 안식일에 일을 함으로써 안식일을 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안식일에 많은 이적을 행하시고 선을 행하심으로써 바리새인들과 갈등을 빚습니다. 사실 복음서에서 가장 많은 사건과 논쟁이 일어난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하필이면 안식일날 이런 일들을 행하셨을까요? 그것은 진정한 안식의 의미를 인간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이의를 제기하는 바리새인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복음서의 독자들이 안식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반대편에 서서 예수님과 갈등을 한다고 바리새인들을 비난하거나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로 치부하고, 심지어 악으로 규정한다면 복음서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하나님의 뜻을 놓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한 세계관을 가지고 끊임없이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짐으로써 그들의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복음에 이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복음서입니다. 바리새인 비판서가 아니라는 점이지요.

바리새인들과 현대신학

교회는 사회의 보편적 윤리를 무너뜨리거나 세우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한 사회가 형성하여 온 고유의 가치관들을 통해 우리는 구원이라는 놀라운 세계를 경험합니다. 예를들어 “간음하지 말라”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단지 성경에 국한된 것이 아닌 인간의 보편적인 윤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에 연루되었다고 가정해 보죠. 그 사람은 그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자책감과 죄의식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가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용서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죄의식으로 해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배우자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빌고 또 배우자로부터도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 때 간음해서는 안된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우리 사회의 윤리가 이 분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 가면 일곱 번에 일흔 번이라도 용서를 받는다고 용서를 받고 난 이후 다시 간음을 해서는 안되지요.

그런데 이 사람을 계속해서 손가락질하고 정죄하고 비판하고 심지어 왕따를 시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도덕적인 틀 안에 가두어 놓으려고 노력하기도 하지요. 심지어 완전한 도덕적 삶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길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교회에서 발붙일 공간을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도 합니다. 이 경우 많은 사람들이 위선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고 나누어 치유하기 보다는 위장하고 남들 앞에서 선한 모습으로 비추어지도록 가면을 쓰게 만들지요. 예수님은 이같은 노력들을 ‘위선’이라고 규정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속에서 행위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자녀로써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회에서든 사회에서든 삶에 실패한 실패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합니다. 바리새적 생각을 가진 분들은 그를 정죄하고 비난합니다 (마음으로든 실제로든). 하지만 더 성숙한 사람은 죄지은 자를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합니다. 그것이 건강한 교회공동체의 모습입니다. 남을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그를 용서하는 것은 엄청난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수 많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이 가르치신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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