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뿌리는 자
February 28, 2015 | by B2B Missions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 1] 돌밭이 자기 노력으로 좋은 땅이 될 수 있을까? (막 4:1~20) (마가복음 14)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을 가르치실 때 수 많은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그 중에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세개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비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시고자 한 것을 한마디로 “좋은 밭이 되자!”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좋은 밭이 되어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결실을 하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는 것이지요.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좋은 밭이여야 하고 (엄밀히 말하면 좋은 밭이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 말에 이견을 제시할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단지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서는 앞에서의 ‘당위’를 떠나 좀 다른 각도에서 이 본문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 당위가 그렇다고 해서 성경자체를 그렇게 해석해 내는 것은 좀 곤란합니다. 특히, 성경을 인간의 교훈이나 도덕, 윤리적 관점에서 바라 보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습관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참 뜻을 파악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들이 해석상 오류를 범하고 적용상 오류를 범하는 대표적인 성경말씀이 바로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먼저 오늘의 본문 마가복음 4장 1절부터 2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1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더라 2 이에 예수께서 여러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쌔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치 못하였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9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10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 두 제자로 더불어 그 비유들을 묻자오니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시고

13 또 가라사대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뇨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 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간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이는 가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막 4:1-20).

본문이 포함된 전체 내용 파악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하기에 앞서 이 비유가 속한 전체 성경말씀을 찾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이 비유는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비유를 설명하시고 제자들에게 실제로 비유에서 가르친 그 삶을 그대로 보여주셨다는 점을 주목해야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남아 복음을 교회를 이루고 복음을 전하며 살다가 환란과 핍박을 당할 제자들에게 생전에 충분히 보여 주시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포함하여 예수님이 가르치심은 어디까지로 보아야 할까요? 큰 그림으로 읽으면 전체 단위는 4장 1절~5장 43절로 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은 두 개의 장(4장과5장)을 통해 예수님이 부활 승천 하신 후 이 땅에 남겨질 교회의 모습, 천국에 이르는 성도들의 삶의 모습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체험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4장~5장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4:1~20:                  씨뿌리는 자의 비유

4:21~25:                등불의 비유

4:26~29:                자라는 씨에 대한 비유

4:30~34:                겨자씨에 대한 비유 및 예수님의 비유의 가르침에 대한 설명

4:35~41:                풍랑을 만난 제자들과 예수님의 개입

5:1~20:                  군대귀신들려 고생하는 자와 예수님의 개입

5:21~24: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 길을 가시다

5:25~34:                열두해 혈우병을 앓던 여인과 예수님의 개입

5:35~43:                열두살 여자 아이의 죽음과 예수님의 개입

위 내용을 보시면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위의 모든 내용들이 하나의 중심주제를 가지고 다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가르침의 핵심이 맨 앞부분에 쓰여진 씨뿌리는 자의 비유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들인 우리는 4장과 5장 전체의 제목을 만들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제목이 바로 성경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여야 합니다. 제목으로 어떤 것이 적당하까요?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땅에 남겨진 교회’로 잡고 싶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분명 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13장에 나오는데 모두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바와 같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천국이 도래했고 이 땅에 남겨져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의 삶이 아닌 현실이 엄청난 고난으로 다가 올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교회가 세워진 이후 초대교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한 핍박을 받았고 그것을 견디어 내야 했습니다. 위 마가복음 4:35~5:43은 바로 그 모습을 실제적인 예를 통해 제자들이 가르치신 것이지요. 문제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 안에 바로 그러한 모습들을 그대로 포함했다는 점입니다. 그 포인트가 성경의 독자들이 발견해야 할 몫이지요. 어떻게 알아 낼 수 있을까요? 전체의 틀을 이해하였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해석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은 사람들

앞에 제시한 본분을 다시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첫 부분은 예수님이 배위에 오르셔서 구름처럼 몰려 든 사람들에게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르치는 것이고, 둘째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일부 함께 한 사람들과 열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셋째 부분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부분은 물론 씨뿌리는 자의 비유이지만 그 해석을 들어 그 비유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은 일부 사람들과 비유는 들었으나 그 이미를 전혀 알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난 수 많은 사람들을 구분하는 의미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마가복음에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들은 사람들을 “큰 무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큰 무리가 모여 들었고 예수님은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무리들은 대부분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정작 예수님으로부터 해석을 듣지 못하고 비유만 듣고 떠난 것이지요. 하지만 그 곳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소수의 사람들이었지요. 이들에 대해 알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0절에서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 한 사람들이 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라고 되어 있고, 35~36절에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가더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하신 비유를 들은 사람들과 비유의 해석까지 들은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 달랐다는 말이 됩니다.

들을 있는 자만 듣는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라고 마무리 하십니다. 이 말씀은 비유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 들어 그 비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구별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문제는 비유의 말씀을 알아 듣는 사람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점이지요. 그렇다면 왜 들을 귀가 없는 것일까요?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곁을 떠나고 비유에 대해 풀이를 하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꺼내 십니다.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4:11~12).

예수님은 자신이 하신 말씀을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고 규정을 하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되지요. 그러면서 사람들도 ‘너희’와 ‘외인’으로 분명하게 구분을 합니다. 그리고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여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2절)하여 그 목적 또한 분명히 하고 계십니다. 다시말하면 “저희”라고 명명된 사람들 (그곳에서 비유를 들었으나 그 해석은 듣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을 포함)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는 해석이 필요없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분명한 설명이고 또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인간의 교훈으로 가르치고 인간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

씨뿌리는 자가 씨를 뿌렸으며 씨들은 네 가지의 서로 다른 밭에 떨어졌습니다. 첫째는 길가요, 둘째는 돌밭이요, 셋째는 가시떨기요, 넷째는 좋은 땅입니다. 씨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자인데 이는 예수님입니다 (어떤 이들은 ‘복음 전하는 이’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는데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예수님외에 다른 사람들(심지어 제자들조차)은 해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밭들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첫번째 그룹은 길가로 명명된 그룹입니다. 이들은 말씀이 하나도 자신들의 것이 되지 못하고 그냥 소귀에 경읽기가 되고 만 사람들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이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만 하고 해석조차 듣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간 사람들입니다. 둘째 부류는 돌밭에 뿌려진 씨인데 예수님은 돌밭을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즉시 받으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란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4:16~17)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4:35~41절에 보여주십니다. 밤에 풍랑을 만난 사람들이 예수님을 깨워 그 풍랑을 잠재우는 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환란을 당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그 믿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도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면 우왕좌왕하며 혼란에 빠지는 분들이 믿는 분들가운데도 많은데, 바로 이런 모습들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셋째 부류는 “말씀은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입니다. 재정적인 문제 세상의 염려에 대한 문제는 열두해 혈우병을 앓는 여인을 통해 보여 주십니다. 그 여인은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도 없고 더 중하여 졌던 차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재정적으로 매우 궁핍해 진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두번째와 세번째 모두 예수님이 개입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네번재 부류는 어떠한 사람들일까요? 그들에게는 환란이 없었을까요? 그들에게는 궁핍이나 질병이나 핍박이 없었을까요? 당연히 그들에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그 환란을 견디어 나간 것이지요. 그것이 열매입니다. 열매는 인간이 맺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맺는 것입니다. 인간을 통해 맺어지는 것이지만 그것은 분명 하나님의 것이지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 스스로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가 그리스도인을 통해 맺혀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그리스도가 피로사신 교회는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설명하면서 좋은 밭이 되라고 교훈합니다. 하지만, 밭은 스스로를 개간하지 못합니다. 길가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해석을 듣지 못했습니다. 돌밭에 속한 사람들은 환란을 만나자 우왕좌왕하여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개입하시고 나서야 비로소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었지요. 셋째부류의 사람들도 동일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밭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우리는 마가복음의 일차 독자들이 처한 현실에 대해 이미 공부했습니다. 그들은 네로황제의 폭정과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핍박을 견디어 내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환란을 찬양과 기도로 견디어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하나로 죽어갔지만 교회는 점점 더 성장해 갔습니다. 환란과 핍박이 그들의 결실을 막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 결국 좋은 밭은 예수님이 피로 사신 교회였던 것이지요 (B2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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