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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14, 2015 | by B2B Missions
[성경올바로이해하기시리즈 1]  군대 귀신들린 자는 누구인가? (막 5:1~20)  (마가복음 16)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라는 말은 성경해석의 기초를 강조한 말입니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역설하는 사람들 조차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고 그렇게 해석한 것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문자적으로 해석된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둔갑하여 맹신되고 주장되고 실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은 군대귀신에 들려 사슬에 매인 채 무덤가에서 소리를 지르며 절규하고 있는 한 비참한 사람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그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의도는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석을 위한 올바른 질문들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는 올바른 질문이 필수적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아전인수로 해석, 적용하는 맹목적 신앙을 피하는 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끊임없는 질문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대한 타당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올바른 태도이지 설교시간에 선포되는 설교말씀이나 각종 성경공부시간에 주는 답을 정답인 냥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성경읽기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무슨 질문들을 해야할까요?

첫째, 성경읽기의 가장 기본적 목적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스토리를 주관하고 이끌어가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에피소드를 읽을 때 ‘왜 하나님이 이런 사건을 보여주셨지?’라는 질문을 기본으로 던져야 합니다. 두번째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 사건을 성경 최초의 독자들은 어떻게 이해하였을까?’입니다. 성경은 글쓴 이와 최초의 성경을 받아 본 받는 이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물론 글쓴 이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경을 기록했고 성경의 최초 수신자는 이 말씀을 보고 자신들의 상황, 자신들의 삶이 해석되어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해석되어진 그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알아낸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올바른 성경해석은 최초의 수신자가 느꼈을 감정과 깨달았을 내용을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지막으로 던져야 할 질문은 ‘이 사건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고 있지?’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사건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하나님이 성경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시고자하는 뜻의 범위를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또한 최초의 독자가 이해한 그 하나님의 뜻을 왜곡해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습니다. 당시에 느꼈던 그 느낌, 당시에 깨달았던 그 진리가 오늘날에도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독자들이 세가지 질문은 늘 명심을 하시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당시의 독자들이 이해했을 그 말씀을 그대로 해석해 내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문화적 상황, 당시 독자들이 처했던 상황, 당시의 문학, 문체, 문법, 단어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이해하기에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공부가 뒷바침 되어야 하므로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에는 전문서적이나 자료들을 검색해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현대의 독자들이 자신의 세계관을 버리고 당시 성경을 최초로 읽었던 그들의 세계관으로 가지 않으면 성경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지요. 이같은 기본적인 해석의 틀 안에서 마가복음 5장 1절~20절에 기록된 군대귀신 이야기를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군대귀신 들린 자는 누구인가?

5장2절~5절에서 귀신들린 사람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무덤사이에 있었고 예수님이 오시자 무덤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는 아무도 쇠사슬로 조차도 맬 수 없었습니다. 쇠사슬로 매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고 쇠사슬과 쇠고랑을 채워 놓아도 이내 깨뜨렸으니까요. 그는 무덤에서나 산에서 밤낮 소리를 지르며 자기 몸을 해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힘을 지녔지만 그를 힘들게 하고 그로 하여금 광기를 부리게 하는 것은 그 안에 든 귀신이었습니다. 그는 무덤가에서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를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그는 누구이며 예수님은 왜 그를 굳이 찾아가신 것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내용만을 보면 그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귀신이 들어 있었고, 그것으로 너무 고생을 하고 있었다는 것뿐입니다. 이 내용만으로는 이 사람이 누구인지 왜 예수님이 그를 찾아 갔는지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독자들에게 이 내용이 어떻게 이해되었을까?하는 질문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연재되는 시리즈에서 우리는 마가복음의 최초의 독자들이 로마제국의 네로황제 치하에서 엄청난 핍박과 고난을 당하는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사실을 여러 차례에 걸쳐 이야기 하였습니다. 당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로마 군대가 두려워 숨어 지내고 있었고, 모임 한번 가지려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야 했던 시절입니다. 같은 배경아래 쓰여진 히브리서를 보면 당시의 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나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19-25).

이 히브리서 말씀은 요즈음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은 모임을 갖고자 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처지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이 있고, 죽어서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는 우리들이 외부의 핍박이 두려워 더 중요한 것을 포기 할 수는 없다’라는 취지로 격려하는 말씀이 바로 히브리서 말씀입니다. 마가가 속해 있던 로마교회 공동체가 바로 죽음에 노출되더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포기할 수 없을 정도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전제로 다시 귀신 들린 자의 이야기로 들어 가봅시다. 이 사람은 쇠사슬로 묶어 놓아도 쇠고랑을 채워놓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는 체포하고 쇠사슬로 묶고, 쇠고랑을 채우고, 사자들과 싸우게 하여고 소용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핍박하면 핍박할 수록 더 빠른 속도로 전도가 되고 오히려 폭발적으로 믿는 자의 수가 증가하였습니다. 그들은 신앙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의 목숨은 하찮은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성소에 들어갈 담력이 있었고, 그들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았기 때문이지요. 히브리서는 이들의 상황에 대해 간접적으로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33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36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 11:33-38).

이 히브리서 말씀은 마가복음에 귀신 들린 자가 처한 상황과 놀랍게 흡사합니다. 따라서 마가복음 5장에서 묘사된 그 귀신들린 자는 다름 아닌 당시 로마의 압제에서 힘겹게 믿음을 지며가고 있는 로마교회 사람들…우리 믿음의 선진들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예수님이 거라사 지역에 가서 만난 그 사람은 실제로 그곳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에게서 귀신을 쫒아낸 것도 문자 그대로 사실이구요. 그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왜 굳이 그곳에까지 가셔서 제자들에게 그의 처지와 그에게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보여 주셨을까?’입니다. ‘마가와 함께 로마에서 고난을 당했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다는 베드로는 자신의 눈 앞에서 벌어지는 그 핍박을 보면서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군대귀신 들린 자의 고백에 주목하라

6절~7절을 읽으십시오. 귀신 들린 자가 멀리서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나와서 예수님게 절을 합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데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게 마옵소서.” 귀신들린 자의 입을 통해 선언되는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그 안에 있는 귀신의 고백이자 귀신들린 자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귀신들에게 나오라고 명령을 하셨기 때문에 일차적으로는 귀신의 고백이지요. 하지만, 당시 그리스도 인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 그것 때문에 그런 괴로움을 당했습니다. 사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라지만 그 믿음의 이면에는 예수님이 계셨던 것이지요. 따라서 이 고백안에는 그 괴로움과 고통으로부터 빨리 벗어나고픈 그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것입니다.

여기서 귀신들린 자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신지 얼마되지 않았고, 예수님은 갈릴리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사역을 해 오셨습니다. 물론 그의 소문이 온 사방으로 퍼졌을 수 있지만 요즈음처럼 예수님의 사진이 돌아다닌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귀신들린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보자마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 보았을까요? 그리고 그가 고백하는 그 고백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냥 영적인 세계에서는 다 알게 되어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사안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미리 알려 주었고 그는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이 알고 있었다고 전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이 귀신들린 사람을 초대교회 공동체의 은유적 표현으로 본다면 그들의 고난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그를 핍박하던 로마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됩니다. 결국 이 에피소드에서의 이 선언은 교회의 고백이자 교회를 핍박하는 로마제국의 권력자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그 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막 15:37-39).

여기서 백부장은 예수님을 처형한 로마군대의 지휘관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렇게 죽으신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예수님에 대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한 것이지요. 마가복음 5장의 군대귀신 들린 자도 똑같이 고백을 합니다. 그렇다면 마가복음 전체는 무엇을 설명하려 한 것일까요? 마가복음을 읽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마가복음이 이야기하고자 한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그 글을 읽는 우리도 ‘예수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다

8절~12절을 읽으십시오. 예수님은 그곳에 오기 전에 이미 귀신들에게 명령하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귀신이 예수님께 저항을 했다거나 말을 듣지 않고 다른 일을 꾸몄다거나 그 사람을 더 해꼬지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귀신들은 순순히 예수님의 말에 순종했고, 그들 스스로가 돼지떼에 들어가기를 간청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군대였습니다. 그런데 그 군대라는 용어가 재미있습니다. 그가 사용한 군대라는 용어는 ‘레기온’(λεγιὼν)인데 이는 당시 로마군대의 편성단위로 약 6000명의 병사에 해당합니다. 로마에서 가장 큰 규모의 군대단위였지요. 그 군대가 이 작은 사람하나를 잡고 있었는데 이 사람은 그에 의해 굴복당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면 그 엄청난 힘의 로마군대에 핍박을 당하고 있는 교회공동체의 모습이 연상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들에게 절대 굴복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예수님의 역사 개입은 그가 오시기 오잔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그를 만나기 전에 이미 귀신들에게 말을 하였고 귀신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떨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자진해서 그로부터 나와 돼지들에게 들어 간 것이지요. 당시 유대사회에서 돼지는 가장 혐오스러운 동물로 세상적인 것의 상징 동물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개입으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모든 세력들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이 괴멸하게 된 것이지요.

예수님은 밤에 위험을 무릅쓰고 이방땅으로 가셨을까?

우리는 마가복음 4:35~41에서 제자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풍랑으로 인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한 것이 예수님에 의해 의도된 것임도 알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건너 온 곳이 이방땅 거라사 지방이고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고 와서 만난 사람이 군대귀신들린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이 사람에게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는 이내 갈릴리 땅으로 건너가십니다 (막5:21).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그 밤에 그 위험을 무릅쓰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 이방 땅으로 가셨을까요?’ 이런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겨우 군대귀신들린 사람 한사람을 낫게 하기 위해서 였을까요? 정답은 ‘맞습니다!’ 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셨고, 그 고침을 받은 사람에 의해 예수님의 이름이 데가폴리(열개의 도시라는 뜻으로 온 도시라고 해석을 해도 무방함)에 전파되었고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막5:20). 그것이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 최종적으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최종결과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이고 이 사건의 의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뜻을 세우면 그대로 되는 것이지까요. 하나님의 뜻은 한번도 변함이 없이 성취되어 왔습니다. 이 사건에서 성취된 일은 첫째, 귀신들로 인해 고생하던 그가 온전해진 것이고, 둘째, 그를 붙잡고 있던 군대귀신이 돼지때에 들어가 몰살한 것이고, 세째, 이방 사람들이 벌어진 사건을 보고 두려워한 것이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이름이 온 이방에 전파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그 밤에 그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으로 건너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군대 귀신을 몰아 낸 사건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 그리고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따라 귀신들린 사람들의 귀신을 쫒아 내어 주라고 이 사건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닥칠 환란을 미리 보여 주시고 그 환란 가운데에서도 인내하고 견디면 예수님이 역사 가운데 반드시 개입하셔서 그들을 환란으로부터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기 위한 것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고통이 있나요? 예수님으로 인한 핍박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수모가 있나요? 당시 마가와 함께 고난 당하는 그리스도인을 가슴아프게 바라 보았던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19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19-21).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고난을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이 이미 당신의 역사 속에 개입하고 있으며 앞으로 직접 오셔서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한 소망이 있는 우리는 그 상황을 믿음으로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B2B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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