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48-Reading_bible-630
June 25, 2016 | by B2B Missions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Tory (2016-6-26): 사라의 부고장 (창23:3-4)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아브라함에게 있어 아내 사라의 죽음은 절망보다 더 깊은 슬픔이다. 유대인의 풍습에 따르면 가족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유족은 옷을 찢고 슬픔을 표했다고 한다. 야곱은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의 습격에 의해 죽임 당했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랫동안 요셉을 위하여 애통했다 (창37:34참조).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알려진 욥도 자기 자식들이 죽었다는 비보에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렸다 (욥1:20). 아브라함도 그랬다. 아내의 시신 앞에 옷을 찢고 허망한 모습으로 엎드려 있던 아브라함이 정신을 차렸다. 마냥 주저앉자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날 한국의 풍습처럼 삼일장, 오일장을 치르는 게 아니다. 죽은 자들의 시체를 당일 안으로 처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신명기 21장 22~23절 말씀을 대대로 지켜왔다.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라” (신21:22~23).

이 말씀은 흉악범을 사형시킬 경우 그 시신을 나무에 달아서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로 삼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몇날 며칠이고 나무에 달아 놓지 말고 당일 하루만 그렇게 하라는 명령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확대 적용하여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당일에 무덤에 안치했다. 이렇게 하는 데는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유대인들은 인간의 근원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인간은 땅에서 왔으며 땅으로 돌아가야할 존재다. 그렇기에 될 수 있는대로 시신을 땅으로 보내주는 것이 고인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다.  영혼은 이미 하나님의 품에 안겼는데 아무 쓸모 없는 흙을 돌려보내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 또한 고인을 불경스럽게 하는 일이다 (이스라엘 문화원, www.iscc.co.kr에서 내용을 얻었음).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 그런데 자기 땅 한 뼘 없이 나그네로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시신을 안치할 마땅한 장소를 찾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않는 들판 아무데나 시신을 묻을 수도 없다. 아브라함은 고민에 빠졌다. 아내의 시신을 어디에 묻을 것인가?  그는 일어났다. 그리고 그 땅의 주인인 헷 족속에게 갔다. 아내를 묻을 땅을 사기 위해서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 말한다.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 잠시 머무는 사람입니다. 당신들 중에서 나에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 묻게 하십시오” (창 23:4).

아브라함은 나그네로 살았다. 그는 자신이 이 땅에 잠시 머무르다 갈 존재임을 정확히 인식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집에 죽은 자가 생겼다. 그것도 가장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영혼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갔다. 이제 사라의 몸을 그 근본인 땅으로 돌려보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내의 시신을 누일 땅 한 뼘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지금 낯선 땅에서 그곳의 거주민에게 아내의 부고를 알리고 있다. 자신의 고향 메소포타미아에서 만나 100여년을 함께 살았던 아내가 죽었다. 하나님을 믿고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헤메다니다가 지금은 헤브론 땅에 머물고 있다.  헤브론은 사랑하는 조카 롯이 떠나고 난 후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머물렀던 땅이다. 그 후에 가나안 지역을 돌고 돌아 아브라함은 다시 헤브론으로 왔다. 그리고 거기서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다.

우리 인생이 그렇다. 청, 장년기를 지나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점점 죽음을 접하는 경우가 늘어난다. 인생사가 그렇지 않은가? 갓결혼한 젊은 시절엔 주로 친구 자녀들의 백일잔치, 돌잔치에 참석하느라 바쁠 때가 많다. 그런 소식들은 즐겁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중년에 접어들면 기쁜 소식보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친구나 지인들의 부모님들의 부음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고 가끔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분들도 보게 된다.  장례식에 참석하여 함께 우는 일이 점점 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어느덧 자녀들의 결혼 소식도 날아든다. 잠시 삶의 기쁨도 맛본다. 새로운 가정이 탄생하는 것이니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하지만  이제는 부부 둘만 남게 된다. 나이든 부부끼리 서로를 의지해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죽음은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들 일이 된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한 사람만 남게 된다. 그리고 남은 자가 친구들에게  쓸쓸히 배우자의 부고장을 알린다. 그러고 보면 인생사가 다 거기서 거기다. 이처럼 죽음은 모든 사람을 슬프게 한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죽음은 모두에게 슬픈 일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이런 슬픔 가운데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도 기쁜 소망을 갖게 한다. 그것이 지금의 아브라함을 일어서게 한 힘이다. 그는 슬픔 속에서도 소망을 갖고 아내의 장지를 구하러 간 것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이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끝은 죽음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그 말에 동의합니까? 만약 동의하지 않는다면 죽음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Comments are closed
단체명: B2B Missions    특수법인 고유번호: 603-82-69556
대표: Chang, Kevin Wooseung    주소: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153, 8층 855호    전화: +82 2-702-1491
B2B Missions © 2016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