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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2016 | by B2B Missions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6-5-3): 하나님의 언약식 (화요일)

오늘의 본문 (15:7~11)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후손 문제는 이제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어느 정도라 함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만큼만을 뜻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모든 것을 상세히 다 알려주시지는 않았다. 아브람의 몸을 통해서 나올 아들이라고만 말씀하셨지 반드시 사래의 몸을 통해서 나올 아들이어야 한다는 것은 아직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아브람이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다. 따라서 그의 믿음의 수준도 거기까지다. 인간은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 이상을 넘겨짚거나 추측할 수 없다. 설령 추측해 본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쩄든 아브람은 약속의 자녀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후손에 관해 말씀해 주신 하나님은 이제 약속의 땅으로 이슈를 옮겨가신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아브람에게 주기 위해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낸 여호와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스스로가 누구인지 다시 한 번 아브람에게 확신시키고 계신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주고자 아브람을 고향에서 불러 내었다. 그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다.  지명이 갈대아 우르가 아니다. 지명은 우르다. 갈대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르라는 뜻이다. 참고로 우르는 ‘빛’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아브람이 살던 곳은 갈대아 사람들의 빛이라는 뜻도 된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갈대아 사람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했다.  갈대아인의 빛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빛으로 옮겨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아브람에 주겠다고 재차 약속하신다. 하지만 아브람은 답답했다. 약속의 땅은 무주공산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터를 잡고 대대손손 살아왔기에 당연히 그 땅은 그들의 땅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 땅을 아브람에게 주겠다고 하시니 답답하고 막연하기 그지 없었다. 먼 갈대아 지방에서 이주해 온 아브람은 가나안 사람들에게는 한낱 이방인에 불과하다. 게다가 그들을 정복할만한 능력도 없다. 그들이 사는 땅에 얹혀 사는 것만도 감지덕지해야 할 아브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땅을 아브람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말씀을 순순히 믿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그 땅을 자기가 가질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아브람이 하나님께 질문했다.

“주 여호와여, 제가 이 땅을 소유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창 15:8).

이 질문은 아브람의 답답한 심경을 그대로 담고 있다. 대체 어떻게 이 가나안 땅을 자기에게 준다는 것인가? 사방이 적으로 둘러 싸여 있는 이 땅에서 자기 가족하나 건사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런데 롯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그 일대에 자자하게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때부터 가나안 모든 종족들이 낯선 이방인인 아브람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은 너무 무리다. 믿음은 현실과 동떨어진 허황된 꿈을 믿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께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나에게 3년된 암소와 3년된 암염소, 3년된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와라.”

하나님의 대답은 이번에도 우리의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다. 아브람은 땅을 가지게 될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여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뜬금없이 짐승들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도대체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 당신이라면 이 말씀이 쉽게 이해가 되는가? 동문서답도 유분수지 하나님은 매번 이런식이다. 자손이 아브람의 몸에서 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는 질문에는 갑자기 밖으로 데리고 나가 별을 보여 주시며 저 별처럼 자손을 많게 해줄테니 걱정하지 말고 믿으라고 하시더니 이번에는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도대체 희생 제물과 가나안 땅을 주시는 것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그것이 땅을 소유하는 방법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이번에도 아브람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명령을 수행한다. 아브람의 반응은 즉각적이다. 그런데 아브람의 행동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발견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짐승을 가져오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런데 아브람은 그 짐승을 가져다가 반으로 쪼갰다. 구약에서 짐승을 둘로 쪼개는 행위는 둘 사이의 약속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언약식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아브람은 언약식을 거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언약은 쌍방간의 언약이 아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행하는 언약이다. 하나님은 공여자고 아브람은 수혜자다. 하나님은 자손과 땅을 얻기 위해 아브람이 행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않았다. 요즈음 말로 하면 하나님이 을이고 아브람이 갑인 셈이다. 이 말은 약속의 이행 과정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어떤한 요구 사항도 제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약속 이행에 따른 선행 조건이 아브람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브람은 언제든지 약속을 이행하시도록 하나님께 촉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불공평한 언약식을 거행하기 위해 지금 아브람이 짐승의 몸을 쪼개 놓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언약을 복음라고 말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의 선포다. 우리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우리들과 한 모든 약속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조건부 언약이 아니다.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이고 은혜다. 이 복음을 위해 하나님이 직접 제물을 준비하셨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이 희생 제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셨지만 그분을 희생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고 그 몸을 찢고 피를 흘리게 한 장본인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 당시에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헤롯왕, 로마 군사 등으로 대표되는 세상의 모든 권력이 합세하여 예수님을 희생 제물로 만들었다.

아브람이 짐승을 제물 삼아 하나님과 언약식을 거행하는 장면은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의 예표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 죄인들과 하나님간의 언약식이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죄인인 우리가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떨어졌다. 하나님의 진노가 희생 제물 되신예수님께 퍼부어 짐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그것을 힘입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된 것이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차지하는 비결은 창이나 칼 등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희생 제물을 통해서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를 얻는 비결은 우리의 노력이나 애씀이 아니라 오직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의 이야기를 통해 그것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묵상을 위한 질문

당신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되었습니까? 그 과정에서 당신이 한 일은 무엇인 가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당신에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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