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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2016 | by B2B Missions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6-5-1):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다 (주일)

오늘의 본문(15:1~6)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하나님은 후손 문제로 번민 가득한 아브람의 푸념을 끝까지 들으셨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에게 분명히 말씀하셨다. 후손은 반드시 아브람의 몸에서 나올 거라고 말이다. 오직 아브람의 생물학적 자손만이 후손의 자격이 있다고 못을 박으셨다. 그리고는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오셨다. 그리고 별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다.

“하늘을 바라보아라. 네가 그들을 셀 수 있다면 별들을 세어 보이라.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

사실 얼마나 뜬금없는 말인가? 상식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아브람을 살살 달래가며 자신의 계획을 차근차근 알아 듣도록 설명해 주셔야 할 것 아닌가? 깊은 시름에 빠져 있는 아브람을 위로하는 말씀이오히려 더 모호하기만 할 뿐이다. 아직 아브람 몸에서 난 후사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그 자손의 숫자가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고 계시니 말이다. 약속이란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자손을 줄 것인지 구체적으로 귀띔만 좀 해 주셔도 답답하고 섭섭한 마음이 좀은 풀릴텐데 갈수록 하나님의 약속은 점점 더 황당해지기만 한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아브람이 보인 반응이 매우 놀랍다. 성경은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고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겼다고 한다.

이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성경은 계속해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가 이어진다. 하나님의 말씀도 그렇고 아브람의 반응도 그렇다. 하나님은 상속자가 아브람의 몸에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이로써 롯이나 엘리에셀은 확실하게 상속 후보자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데 문제는 아브람의 아내 사래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다. 아무리 아브람이 애를 쓴다 해도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다른 여자와 두 번째 결혼을 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언약대로 실현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브람은 이 말씀을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가 정말 손톱만큼이라도 사래를 통해 아들을 얻게 될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 알다시피 그 이후에 아브람이 한 행적을 보면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아브람은 바로 이어지는 16장에서 하갈을 첩으로 들였다. 아내 사래가 도저히 자기는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아브람을 설득한 것이다. 그래서 사래의 몸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얻게 되는데 그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아브람은 나이 86세에 처음으로 자신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을 낳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 온지 꼭 11년째 되는 해이다. 그러니 하갈을 첩으로 맞은 시점은 10년째 되는 셈이다. 아브람은 자신의 몸을 통해 후사를 이을 아들을 얻었다. 그리고 그를 정말로 하나님이 약속한 상속자로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그로부터 13년 후인 99세 때 하나님이 그에게 또 다시 나타나셔서 사라를 통해 약속하신 상속자를 주겠다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백세된 사람이 어찌 아이를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이니 어찌 출산하리요” (창17:17).

이 시점에 아브람은 믿음은 온데 간데 없었다. 이미 자신의 몸에서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났고 건강히 잘 커가고 있는데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다른 아들을 주시겠다니 그는 헛웃음이 났다. 너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이렇게 아뢴다.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창17:18).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와 보자. 아브람의 믿음은 무엇이었는가? 누가 되었든 자신의 몸에서 낳은 아들이면 당연히 상속자로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라를 통해 아들을 줄 계획이셨다. 아브람의 몸에서 아들을 낳을 거라는 것은 필요 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반드시 사래가 낳은 아들이라야만 한다. 이런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 리 없는 아브람은 단지 자기 몸에서 나온 아들이어야 한다는 필요 조건만 갖추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는 그걸로는 불충분했다. 게다가 그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아브람이 아닌 하나님이다. 결국 믿음이라는 것은 언약이 온전히 성취될 때 생기는 것인데 이 언약은 반드시 하나님만이 성취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언약을 이루기 위해 인간이 시도하는 모든 노력은 오히려 일을 더 꼬이게 만들고 결국엔 절망만 가져올 뿐이다.

하나님은 상속자가 아브람의 몸에서 날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그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여주신다. 수많은 별을 가리키며 그의 후손이 그렇게 많아질 거라고 약속하신다. 이어서 성경은 아브람이 그것을 믿었다고 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 여겼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깊이 생각해야 할 대목이 있다. 아브람이 믿었다고 해서 그의 생각과 의지를 스스로의 힘으로 내려 놓았다는 말이 아니다. 여기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를 살펴보면 아브람이 자기의 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어떤 외부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아브람의 의지가 꺽여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으로 해석된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같이 그 순간 누군가가 그의 생각을 움직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도록 했다는 뜻이다. 도대체 지금 이 순간 아브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도록 한 보이지 않는 존재는 누구일까?

여하튼 지금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그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약속이 실제로 이루어질 때까지 믿고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긴 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그만큼 인간은 연약하다. 아무리 믿고 받아들였다 해도 보이는 현실을 외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믿음대로 상황을 바꿀 수도 없다.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대로 상황을 바꾸시는 게 아니라 자신의 뜻대로 상황을 만들어 가신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바뀌길 바라며 기도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믿음은 그런게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재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인내하는 능력이 믿음이다. 믿음은 현재의 상황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과 그분의 뜻을 읽어내는 지혜다. 현실과 나의 생각이 어긋날 때, 지금 눈에 보이는 상황이 현재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인정하는 용기가 믿음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은 자신의 현실을 인정했다는 말이 된다. 믿음은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현실을 자기 뜻대로 바꾸려고 애쓰던 노력을 내려 놓는 것이다. 아브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현실적인 대안들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선택권을 넘겼다. 그것이 믿음이다. 믿음은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경구를 마음 속에 간직하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현실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내는 능력이다. 그럴 때 당신은 잠잠히 그분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은 그런 하나님을 믿는가?

묵상을 위한 질문

당신은 현실과 믿음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어떻게 하나요? 당신은 현실을 인정하며 묵묵히 인내하고 나갑니까? 아니면 자기 힘으로 이 상황을 바꿔보려고 애를 씁니까? 그 애씀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나요? 믿음은 반드시 인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을 실제 경험을 통해 깨달으신 적이 있다면 그것을 서로 나누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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