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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2016 | by B2B Missions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6-4-26): 아브람의 올인(All-In) (화요일)

오늘의 본문 (14:13~16)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소돔과 고모라에서 전쟁이 나서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접한 아브람은 다급해졌다. 아브람은 집에서 훈련해 온 318명과 함께 롯을 구하러 나섰다. 헤브론에서 출발한 아브람의 사병들은 단까지 추격해서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따라잡았다. 헤브론은 가나안 땅의 최남단이고 단은 최북단이다.  헤브론에서 단까지 직선 거리는 약 200Km다. 아브람이 데리고 간 사병들은 기마병이 아니라 보병이었을 것이다. 이들이 하루에 70킬로미터씩 행군했다 하더라도 3일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아브람은 마침내 연합군을 물리치고 다메섹 왼쪽에 있는 세바까지 추격하여 롯을 비롯해 포로로 잡혀간 모든 사람들과 빼앗긴 재물을 되찾아 왔다.

도망친 사람이 아브람에게 왔다. 성경은 아브람을 히브리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독자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히브리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지칭하는 대명사인데 당시 이스라엘은 아직 민족을 이루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시조인 아브람이 이제 겨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뿐인데 여기서 히브리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시대착오적 오류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히브리’라는 단어는 알다시피 이스라엘 백성이 스스로를 지칭해 부르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그렇게 불렀다. 특별히 이집트 사람들은 ‘강을 건너온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히브리인이라 불렀는데 이는 ‘이집트 내에 살고 있는 이방인’이란 의미로 쓰였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려다 실패하자 요셉을 모함하면서 ‘히브리 사람, 히브리 종’이라고 지칭하기도 했고, 출애굽 직전에 이집트 왕이 산아 제한을 명할 때에도 ‘히브리’라는 말이 등장했다.

여기에서는 “히브리사람”과 “아모리 족속”이 대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브람은 지금 이 시점에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는 헤브론의 마므레에 살고 있었다. 아모리 족속에게 아브람은 멀리서 온 이방인이다. 이집트로 팔려 간 요셉도 이집트에서 이방인이었다. 출애굽 직전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집트 인들에게 이방인이었다. 이집트에 사백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이방인이고 나그네였다. 믿는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는 이방인이요 나그네다. 그것이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의 정체성이다.

이방인으로 규정된 아브람의 정체성은 이 땅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롯은 세상을 추구하고 세상을 쫓아갔다. 하지만 아브람은 가나안에 남았다. 그는 하나님이 떠나라면 떠나고 머무르라면 머물렀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세상의 풍요는 늘 우리를 유혹한다.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지만 실상 그 풍요는 인간 내면에 있는 탐욕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마침내는 파탄에 이르게 한다. 반대로 척박한 땅 가나안은 고난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고난은 참된 풍요를 가져다 주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세상의 유혹을 참아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길을 걷는 사람은 반드시 그 풍요를 누리게 돼 있다. 아브람은 고난을 택했고 히브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우리도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각자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에 살며 아귀다툼하고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소돔과 고모라의 유혹을 떨치고 약속의 땅에서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가?

이 전쟁 기록을 통해 온통 아브람의 용맹함이나 철저한 준비성에 초점을 두는 것은 맞지 않다. 오히려 롯을 구출하는데 아브람이 왜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세상을 사랑하여 소돔과 고모라로 간 롯에게 아브람은 왜 그렇게 집착하고 있을까? 단지 조카에 대한 사랑만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아브라함 이야기의 전체 주제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후손에 관한 것이다. 아브람함의 이야기는 거의 다 후손에 관한 이야기다. 이야기의 시작은 불임인 아내 사래로 시작했지만, 사래는 이삭을 낳은 후 이스마엘과 하갈을 쫒아내는 것으로 그 역할이 끝난다.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바치는 이야기에도 사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누가 아브라함의 후손인가가 아브라함 이야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아브람에게는 이삭도 없고 이스마엘도 없다. 유일한 희망은 롯 뿐이다. 그렇기에 아브람은 롯에게 자신의 모든 걸 걸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아브람과는 전혀 달랐다. 하나님의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브람은 늘 자기 눈 앞의 현실 밖에 바라보지 못한다. 아브람에게는 롯만이 유일한 대안이었기에 늘 롯에게 집착한다. 그러다가 이스마엘을 낳고 나서는 그런 태도가 많이 바뀐다. 아브람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을 때다. 그때 아브람은 롯을 위해 중보 기도는 하지만 롯과 그 가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지는 않는다.  그에게는 이미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라는 절대 상수는 배제한 채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변수만을 고려한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자기 경험과 능력으로 현실을 타개하려 애쓴다. 아브람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게 인간들이다. 우리가 함부로 아브람을 비판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묵상을 위한 질문

당신은 무엇에 집착하고 있습니까?  당장의 현실보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인내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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