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of-romans
January 1, 2017 | by B2B Missions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로마서 두번째: 로마서 개요 (2017-1-2)

로마서를 하루에 다 읽고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 본문이 로마서 전체라고 해서 오늘 하루 안에 로마서 전체를 다 읽고 묵상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로마서가 하나의 편지이기에 이를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전체를 한 번 읽어보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로마서의 전반적인 구조나 틀은 학자마다 각기 다른 접근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로마서의 첫 부분 (1:1~17)은 바울 자신의 개인적인 소개와 인사, 편지를 쓰게 된 목적, 복음에 대한 정의가 들어 있다.  특히 1장 17절에 설명된 복음의 정의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간결하고 명쾌하며 강렬하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바로 이 구절을 읽고 온전한 회심을 경험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고 믿음으로 그것이 가능케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로마서 둘째 부분(1:18~15:13)은 복음에 관한 바울의 본격적인 논증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1:18)로 시작되는 논증은 “율법의 의로는 그 앞에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는 절망적 선언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외가 없다.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도 그 율법을 행할 능력이 없으며, 율법없이 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는 이방인들 역시도 하나님 앞에 스스로 의를 행할 능력이 없기는 매한가지다. 게다가 더더욱 절망적인 것은 의를 행하는 건 고사하고 그 누구도 자신의 죄 문제를 처리할 능력조차 없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오로지 절망뿐이다. 외부의 도움이 없이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로마서는 위대한 반전을 선포한다. “누니 데” (Νυνὶ δὲ)!  이 말을 번역하면 “그러나 지금…!”이다. 이 표현은 논증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말 한마디로 지금까지 답답하고 절망적이던 인간들에게 한 줄기 소망의 빛이 서광처럼 비치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바울의 표현은 놀랍게도 1장 18절의 인간에 대한 절망적 선언과 꼭 닮아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 (3:21)고 선언한다. 이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의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바울은 우리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인간의 행위가 아닌 전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것임을 논증한다. 복음에 대한 바울의 주장은 다분히 선언적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에 반대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편지를 읽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의 설명을 선뜻 받아들일 거라거나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인정하리라 여기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바울 자신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런 독자들을 논증으로 설득하기 시작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충분하니 그 안에서 안심하고 평안을 누리라는 이야기다.

그는 먼저 “…우리는 하나님과 평화로운 관계에 있다!”라는 선언으로 독자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5:1).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한다 (8:38). 이 세상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사실을! (8:39). 8장까지 로마서를 바울의 논리를 따라가며 꼼꼼하게 읽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그 복음에 설득당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마음을 열고 읽으면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된다는 말에는 발끈하고 나설 사람들도 있다. 바로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선민으로 살았다. 그들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며 그렇기에 그들은 다른 이방인들과는 다르다는 우월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바울의 주장에 따르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하다. 이방인도 예수를 믿어야 하고, 유대인도 예수를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니 말이다. 유대인이라고 나을 게 하나도 없다는 이 부분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의 논증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밝힌다 (9:1). 바울 자신도 복음을 유대인들에게 설명하는 것이 무척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바울 역시도 유대인이었고, 선민 의식에 누구보다 깊게 젖어 있었던 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면 그 또한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이 인간의 논리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다 불순종이라는 울타리에 가두어 두셨다. 그 이유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긍휼을 베풀기 위해서다. (11:32).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을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 (11:33).

인간이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그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킨다. 자기주도형 삶에서 성령주도형 삶으로 모든 게 바뀐다. 다시 말해 인간 중심의 세계관에서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으로 변화하게 된다 (12:1~2). 복음은 믿는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 변화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모두가 올바른 삶의 태도를 견지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배경에서 하나님을 믿은 사람들끼리 서로 용납하며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게 한다. 이처럼 한마음과 한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복음의 능력이다 (15:6).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15:14~16장)은 바울 자신의 사역과 문안 인사로 끝맺고 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 복음을 실제로 살아낸 사람이다. 그는 편지를 끝맺기에 앞서 지금까지 자신의 사역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힌다. 그가 로마로 가려고 한 이유는 단지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를 방문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알다시피 로마는 그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라 지금의 스페인인 서바나로 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에 불과했다. 그는 앞으로의 자신의 일정을 상세하게 밝힌다. 먼저 예루살렘에 들러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아시아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모금한 헌금을 전달하고자 했다. 그러고 나서 편지의 맨 마지막은 문안 인사로 마무리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안부를 물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질풍노도처럼 온 로마 제국을 복음 하나로 휘젖고 다닌 사도 바울의 또 다른 섬세하고 따뜻한 면을 보게 된다. 그의 편지의 끝문장은 복음으로 능히 견고케 하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마무리 하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시공을 초월하여 배달된 한 위대한 사도의 편지가 놓여 있다. 이 편지를 뜯어 보는 순간 우리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복음의 진수를 제대로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 안에 감추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 안에 들어 오는 순간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될 것이다. 복음은 단지 이론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다 함께 그 능력의 복음 안으로 멋진 여행을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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