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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3, 2016 | by B2B Missions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6-5-2): 믿음이 의(義)다 (월요일)

오늘의 본문(15:1~6)

묵상을 위한 성경이야기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아니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겼다. 아브람이 믿게 된 것이 그에게 의가 됐다. 이 말씀은 그에게 의가 된 것은 그의 행위나 노력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건을 이렇게 이해했다. 로마서 4장 1~ 3절을 읽어보자.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롬 4:1-3).

의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말한다. 단지 도덕적으로 옳은 행실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만약 개개인의 옳은 행실이 의의 척도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면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없다. 설령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어느 정도 호의를 베푼다고 가정한다 해도 선한 행위를 기준으로 본다면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만난 사람들 중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올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세리보다는 바리새인이 훨씬 더 의롭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세리가 바리새인보다 더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하셨다. 그 뿐인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보다 그녀를 비난하고 정죄하기 위해 돌을 들고 모여든 유대인들이 훨씬 더 의롭지 않은가? 그런데 예수님은 죽어 마땅한 그 여인을 용서하셨다. 자신의 몸 하나 가누지 못해 들것에 실려온 중풍병자보다 예수님이 가르치실 때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서기관들이 훨씬 더 의롭지 않겠는가?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것도 한 거라고는 없는 중풍병자에게 죄 용서를 선언하셨다.

이렇듯 의의 기준은 인간의 행위에 달려있지 않다. 인간의 노력을 통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의롭다고 선포해 주셔야 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의에 대해 계속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로마서 4장 4절과 5절을 읽어보자.

“일 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롬4:4~5).

열심히 자신의 의를 위해 갈고 닦는 사람들이 있다. 늘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임을 증명하려고 자신의 열심을 내세운다. 자신이 행한 일들을 나열하며 이정도 하면 하나님이 당연히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사람은 은혜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한다. 조금이라도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하나님 앞에 자기를 엄청난 죄인으로 여긴다. 늘 회개하고 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간다.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가 그런 삶을 살았다. 그는 누가 보아도 의로웠다. 조금의 실수라도 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그것을 씻기 위해 무엇이든 다했다. 하지만 그의 실수, 그의 욕망, 그의 내면의 죄악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그는 도저히 그 죄를 씻을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아흔 아홉 번의 의로운 행위보다 한 번의 의롭지 못한 행동이나 생각이 그의 모든 감정을 지배했다. 어렵사리 신앙 생활을 하던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읽으며 그의 신앙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지 깨달았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1:17).

참된 평안은 행위에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었다. 의로움은 자신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부터 나온다. ‘오직 믿음!’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기까지 루터는 수많은 세월을 방황했다. 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함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당시 천주교의 가르침이 복음에서 얼마나 멀리 와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젊은 혈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복음과 자신의 인생을 맞바꿨다.

오늘날 기독교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기독교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 안이나 밖이나 동일하다. 교회도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기에 인간의 욕망이 곳곳에서 분출하고 있다. 물론 그런 욕망에서 비롯된 도덕적 일탈이나 해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진정한 복음, 500년전 루터가 부르짖은 오직 믿음, 2000년 전 사도 바울이 목숨 걸고 전했던 복음, 2000년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부활하심으로 만드신 복음의 가치가 훼손되고 다시금 인간들의 행위에서 의를 찾으려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당연히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구별된 삶은 세상에 대한 욕망이 죽고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살아난 데에서 기인한 삶이여야 한다. 스스로의 능력과 노력에 의지해서 의를 실천해내려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인도에 순종할 때 나타나는 의로움이어야 한다.

아브람은 더 이상 롯에게 기대를 갖지 않았다. 엘리에셀에게 공을 들이지도 않았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아브람이 믿게 되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는 말은 그가 드디어 자신의 애씀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섭리에 자신의 삶을 맡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무언가가 있는가? 하나님 앞에 의롭게 보이기 위해 자신을 꾸미고 있지는 않은가? 자신의 선하고 의로운 행동들을 남들과 은근히 비교하며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남의 불의를 용서하지 못하고 비난의 손가락질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두 밖으로 나오라. 그리고 하늘의 별을 보라. 별을 셀 수 있다면 셀 수 있을 만큼 세어보라.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해보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믿음은 예수님 앞에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내려 놓고 쉬는 것이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에게 쉼을 준다. 정말 쉬고 있는가? 각자의 믿음을 돌아보고 자신이 정말 믿음 안에 있는지 시험하고 확증해보자.

묵상을 위한 질문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가진 자라면 당신의 삶에서 직면하는 모든 고통스런 문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질까요?  당신은 그 시간을 인내하며 잠잠히 하나님만 의지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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