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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6,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일곱번째: 은혜와 사도됨을 받았다! (2017-1-7)

오늘의 본문 (롬1:3-5)

 

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하나님의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복음의 기초이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간단하지만 매우 심도있게 설명했다. 그리고 1장 5절에서 “우리가 받았습니다!”라고 선포한다. ‘엘라보멘’ (ἐλάβομεν)! (‘우리가 받았다’라는 뜻임). 이 단어는 로마서에서 처음 쓰인 동사다. 그 말은 지금까지 바울은 이 동사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뜻한다. “우리가 받았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일인칭 단수로 말하지 않고 일인칭 복수를 사용함으로써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들까지 다 아울러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것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는 은혜고 두 번째는 사도됨이다. 먼저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다고 했다. 도대체 은혜가 무엇일까? 사실 은혜라는 용어가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단어 임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만큼 무분별하고 왜곡되게 사용되는 단어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 예배에서 설교를 듣거나 찬양을 들을 때 흔히들 은혜 받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감동받은 것을 은혜받은 것과 혼돈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은혜라는 단어는 감동해서 눈물을 흘리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사실 복음을 받아들인 인간이 하나님께 보일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 은혜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만들어진 그 의를 염치 불구하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상태, 그것이 은혜다. 그렇기에 은혜는 긍정적 감정이기보다는 오히려 부정적 감정이다. 죄로 인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노하셨고, 그 결과 죄인들과 관계를 끊어버리셨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과 다시 평화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무한 상태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이 몸소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신 것이다. 죄인이 당해야 할 고난을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희생에 힘입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그 사실을 진정으로 깨달았을 때 죄인에게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바로 ‘은혜’라는 단어인 것이다.

 

인간들은 종종 복음을 자신에게 주어진 혜택으로 왜곡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죄사함, 거듭남, 하나님의 자녀됨, 영생을 얻음, 이 모든 것들이 복음을 깨달은 사람에게 주어진 혜택이다. 그러나 그 혜택이 우리에게 값없이 왔다고 해서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전혀 치르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한 은혜가 주어지기 위해 이 세상 것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도 없는 엄청난 희생이 치러졌다. 그렇기에 은혜라는 단어에는 우리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채무 비용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혜를 깨달은 사람들은 그 순간 자신이 엄청난 빚을 진 자라는 사실을 동시에 깨닫게 된다.

 

사도됨은 바로 은혜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에서 출발한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하나 밖에 없는 가장 소중한 목숨을 내놓았고 그들 모두는 하나같이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 그렇기에 사도됨은 피라미드 같은 교회 공동체의 최상단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됨을 ‘둘로스’로 생각했다. 자신의 모든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르는 종으로 인식한 것이다. 바울은 스스로를 성직자라 여기지도 않았다.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자신들을 높은 위치에 두지도 않았다. 오히려 가장 낮고 천한 자리에서 멸시와 조롱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는 것, 그것이 사도됨이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로서의 삶을 이렇게 술회하기도 했다.

 

9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0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11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13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 되었도다” (고전4:9-13).

 

사도 바울은 한 번도 자신의 사도권을 내세운 적이 없다. 그가 말하는 사도됨이란 세상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고, 미련하고 연약하고 비참한 존재로 멸시당하는 것이며, 주리고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없이 떠돌며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감을 의미했다.  사도는 영광스러운 자리가 아니라 비천한 자리, 세상의 환영 대신 목숨 걸고 돌을 맞는 자리에 서는 자다. 사도들이 세상 잣대로 비난받을만한 행동을 해서가 아니다.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살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했을 뿐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은 온갖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 복음을 전하는 그들을 세상이 환영하기는커녕 오히려 핍박하고 결국에는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알겠는가?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내어 놓는 것, 그것이 바울이 말하는 사도됨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에 관해 들어본 자들이다. 하지만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은혜의 의미를 알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됨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을까? 그리스도인됨은 사도됨과 동의어다. 사도 바울이 우리보다 은혜를 더 받은 자인가? 그가 우리보다 더 사악한 죄인이었고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더 하자가 많은 사람이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자신을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까지 표현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의 은혜를 깨닫고는 스스로를 죄인 중의 괴수라 여겼고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쳤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 이유는 그가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진정으로 깨닫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리스도를 위한 삶으로 완전히 바꿔 놓는 것,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사도 바울은 선언한다. “우리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어떤가? 당신들은 받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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