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IAMs
January 18,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열아홉번째: 나는 빚진 자입니다! (2017-1-19)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14~15절
“나는 빚진 자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빚진 자라고 선언했다. 그가 빚을 지고 있고, 그래서 그가 채무자라면, 도대체 채권자는 누구인가? 바울은 하나님이 채권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채권자라 선언하지도 않는다. 그는 놀랍게도 그와 일면식도 없는 헬라인들, 더 나아가 유대인도 헬라인도 아닌 야만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그리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까지 모두 포함한 사람들을 채권자로 보았다. 놀랍지 않은가?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나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늘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원래 죄인이었다. 죄인이란 행위로 죄를 범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세상의 법을 어겼든 어기기 않았든 상관없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죄인이다. 죄인은 현재의 상태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인간에게서 찾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찾는다. 예수님의 공로를 힘 입는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스스로 피 흘려 자신이 친히 화목 제물이 됨으로써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갚아야 할 빚을 예수님이 대신 갚으셨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채권자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되셔야 한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대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주 채권자인 그리스도에게는 우리가 진 빚을 도저히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 파산자다. 우리가 영적 파산자가 된 이유는 우리가 진 빚이 너무 엄청나서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그 상황에서 우리는 아무런 조건없이 그 빚을 탕감받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그 채무를 갚는 대신 이행해야 할 다른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것은 우리가 받은 그 사랑을 타인들에게 흘려보내야 하는 것이다. 빚을 탕감받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더 이상 상대에게 빚을 갚을 의무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탕감받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의무가 없어진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하고, 교제를 나누고,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 그리스도께 받은 빚을 갚는 행위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러한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겐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주는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이 음식을 먹고, 호흡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 활동들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일 뿐이지 의무는 아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매일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교제를 나누라고 당부하지 않으셨다. 그게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19~20).
 
“제자를 만들라!” 예수님의 명령은 매우 간결하고 분명하다. 제자를 만들라는 것이다. 제자를 만들되 땅끝까지 가면서 제자를 만들어야 하고, 세례를 베풀며 제자를 만들어야 하며,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면서 제자를 만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예배를 드리라고 명령하지 않으셨다. 헌금을 많이 하라고도 하지 않으셨다. 새벽 기도에 빠지지 말라고 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종교적 삶에 대한 가르침을 주시지 않으셨다. 게다가 각자의 유익을 추구하라 하지도 않으셨다. 예수님은 ‘제자 삼으라’는 단 한 마디 명령만 하셨다.
 
사도 바울은 바로 이점에 주목했다. 그는 한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평범하게 살 수도 있었다. 남들처럼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릴 수도 있었고 사역비를 받아 편히 살 수도 있었다. 오죽했으면 그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반문했을까?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고전9:4~6).
 
바울이라고 우리와 특별히 다를 게 있겠는가? 아마도 진 빚으로 따지자면 우리가 훨씬 더 많은 빚을 진 자들이요, 지은 죄로 따진다 해도 우리가 죄인 중의 괴수일 게다. 바울은 특별히 우리보다 못해서 그런 권리를 누리지 않은 게 아니다. 그는 복음의 의미를 깊이 깨닫고 받아들였다. 복음이 그의 마음 안으로 들어와 그를 헤집어 놓는 순간 그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바로 자각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자기를 얽매는 모든 율법적 부담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비로소 무한한 은혜와 자유를 누렸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그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빚진 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빚을 갚는데 바울은 그의 일생을 걸었다.
 
우리는 어떤가? 바울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바울에 비해 우리가 빚을 덜 진 자인가?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대신 아직도 주님께 무엇을 바라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빚진 자의 삶이란 자신이 채무자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신은 채무자인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 하는 채권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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