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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9,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열번째: 예수가 주다! (2017-1-10)

오늘의 본문: 로마서 1:4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 대해 쓴 표현 중 가장 주목해 보아야 할 단어는 ‘우리 주’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님’이라는 말은 너무도 일상적이고 당연한 단어다. 얼마간 교회에 출석하면 그저 입에 붙은 말처럼 자연스럽게 나오는 단어가 ‘주님’이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왜 이 말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강조하고 있을까?

오늘날은 그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지만 사도 바울 당시 ‘주님’이라는 단어는 입 밖으로 함부로 내뱉을 수 없는 금기어였다. 실제로 사도 요한의 제자이면서 서머나 교회의 주교였던 폴리캅은 ‘예수님이 유일한 주님’이라는 고백을 하지 말도록 한 로마 당국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순교 당했다. “예수가 주다!”라는 말은  “시저가 주다” 라는 말에 명백히 대치되는 양립 불가능한 고백이었다.  당시에는 이 세상에 주(Lord)는 오직 시저 한 사람이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당시에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는 것은 반신반인인 황제를 경시하고 그 위상을 단순한 인간의 위치로 끌어내리려는 불온한 언행으로 간주되었다. 반면, 로마제국 변방의 식민지에서 반역죄인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일개 유대인 청년을 주라고 말함으로써 그를 신의 아들의 위치에까지 떠받드는 형국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이 단어는 기독교가 대대적인 핍박을 받는 빌미가 되었다. 사실 기독교가 ‘예수가 주다’라는 고백만 하지 않았아도 로마 제국에 의해 그렇게 가혹한 박해를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체포당하고, 고문당하고, 심지어 죽음 당하기까지 ‘예수가 주다!’ (Jesus is LORD!). 라고 고백했다.  그 말만 입밖에 내지 않았더라면 그런 모진 고난을 당하지 않았을텐데 왜 그들은 이 짧은 고백 하나를 자신들의 목숨과 맞바꾸었을까? 물론 신앙을 목숨처럼 여긴 그들의 신념 때문이었겠지만 앞서 언급한 폴리캅이 순교당할 당시의 상황을 묘사한 글을 보면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신앙의 자세를 갖고 살아갔는지를 알 수 있다.

“폴리캅은 경기장에 끌려오기 전에 체포될 때 너무도 의연하고 인자하며 거룩한 모습으로 기품 있게 병사들에게 식탁을 베풀어 주며 자신만의 시간을 달라고 간청하고는 그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평생을 섬겼던 하나님과의 조용한 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이렇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확실한 신앙을 가진 백발의 노인을 형장으로 이끌고 가야하는 자신들의 처지에 비관하고 마음의 찔림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총독은 폴리캅에게 이제 고령이지 않느냐,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로마 황제를 경배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폴리캅은 “이미 86년간 그분을 섬겼으나, 나에게 한 번도 고통을 준 적이 없거늘 내가 어찌 나를 구원하신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단 말이냐…?”라고 대답하고는 꿈에도 그리던 영원한 나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다.” (기독교타임즈 2006년 4월 5일자에서 인용).

그런데 과연 이런 일이 한 인간의 신념이나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일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폴리캅 한 사람 외에도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순교의 길을 걸었다면 그건 단순히 개인적 신념이나 의지의 차원을 넘어선 전혀 다른 문제로 보아야 한다.  ‘예수가 주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원천은 인간 내면의 신념 그 이상의 어떤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보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능력이 우리 내면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님으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고린도에 보낸 그의 첫 번째 편지의 일부를 읽어보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바울의 이 표현에 따르면 예수님에 대해 당시 사람들이 두 가지 극단적인 인식 차이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으로 인식했고, 다른 한 부류는 예수님을 ‘주’라고 인식했다. 그런데 ‘예수가 주다!’라는 고백을 한 사람들은 그 원천에 성령의 능력이 있었다. 바로 성령님이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셨는데 그때 비로소 예수님이 세상의 구원자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단지 우리를 구원해 주신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우리가 주인으로 모시고 따라야 할 주님이시기도 하다. 사실 여기에서 신앙의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난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데서 오는 혜택에만 관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도록 해 주셨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하신 것이며, 인간들은 그 사역에 어떠한 것도 더하거나 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구원은 신앙의 시작점이지 종착역이 아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이는 예수님을 따르던 열두 제자들에게만 국한된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세상의 좋은 것을 모두 손에 쥘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사실 그건 신앙이 아니다. 신앙은 장밋빛 탄탄대로가 아니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요즈음은  “예수가 주다!”라는 말을 한다고 잡아다가 고문을 하거나 죽이는 일은 없다. 그렇기에 이 선언을 너무도 가볍게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수님이 정말 우리의 주인이시라면 우리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다. 분명 하나님께 어떤 요청을 하기에 앞서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먼저 순종하게 될 것이다. 신앙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개념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고백하고 따르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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