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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5,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여섯번째 : 하나님의 복음 (2) (2017-1-6)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2절

복음은 하나님 아들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 아들의 죽음과 부활이 곧 복음이다. 바울의 논증은 곧바로 하나님의 복음 그 자체인 예수 그리스도에 이른다. 바울은 예수님을 육적인 근원과 영적인 근원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씨로 나셨다. 다윗의 씨로 나셨다는 말은 단지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당시 성경의 주된 독자들인 유대인들에게는 더더욱 다윗의 씨가 지니는 의미는 남달랐다. 오늘날도 그랬지만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 나라를 상징하는 역사적 인물었다. 그들은 다윗과 같은 영웅이 나타나서 자신들을 구원하고 나라를 회복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그들의 메시아 사상은 현세적, 정치적이었고 그 중심에 다윗이 있었다. 다윗은 단지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일 뿐 아니라 유대인들의 마음을 지배했던 구체적인 메시야의 상징이었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기대는 성경 말씀에 그 근거를 둔다. 하나님은 일찌기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사 1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렘 23:5-6).

예수님은 육신적으로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셔야 했다. 그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윗을 추앙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하나님이 하신 약속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인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인 동시에 육적이고 실제적인 구원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만난 장애인들이나 병자들은 예수님께 구원해 달라고 요청할 때 종종 ‘다윗의 자손 예수’라 부른 적이 많았다. 장님이자 거지인 바디메오가 그 대표적인 예다. 예수님이 갈릴리 사역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여리고를 지나게 되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 일행을 따랐는데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예수님 일행이 통행에 방해를 받게 된다. 바로 바디메오의 한 마디 외침 때문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막 10:47).

바디메오라는 이름의 의미는 ‘존귀한 자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존귀한 자, 곧 하나님이시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존귀한 자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었다. 그런데 바디메오가 그 이름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그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앞을 보지 못한 채 구걸로 삶을 연명하던 비참한 존재였다. 그런 육적인 고통에서 그를 구원해 준 분이 바로 ‘다윗의 자손’예수였다. 그렇기에 다윗의 자손이란 말은 단지 족보에 한정된 표현이 아니라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해내고 이웃한 모든 적들을 평정하여 이스라엘 땅에 평화를 가져 온 다윗을 계승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더 나아가 죄로 인해 원수되었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가져다 준 진정한 구세주라는 뜻이기도 하다. 로마서 서두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다윗의 자손은 바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죄로 인해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존재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은 성령을 따라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상징하는 사건을 부활로 설명한다. 사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수많은 이적들과 가르침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직접 보여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심지어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는 그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게 되는가? 바울은 그 과정을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님이다. 잘 알다시피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다.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는 없다. 사도 바울은 부활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14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전 15:12-19).

이처럼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정수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된 것도 부활을 통해서요,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도 다 부활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감스럽게도 교회를 다니면서도 부활에 대한 소망은 뒤로 한 채 현 세상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그 부활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는 일들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이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진정한 복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 주신다. 성령의 임재를 확인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죄로 인한 것이고 그의 부활이 나를 의롭게 하기 위한 사실임을 내가 확실히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사실이 우리에게 진리로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모든 얽매임으로부터 해방되는 진정한 자유, 무한한 은혜와 감사,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음이 갖고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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