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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8,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스물아홉번째: 누구를 예배하는가? (2017-1-29)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24-25절
하나님은 그들을 마음의 열정대로 자기 몸을 더럽히고 불명예스럽게 하도록 넘겨 주셨다고 한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아마도 많은 이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인간들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거리에 널부러져 있는 취객들, 마약 중독자들, 돈독이 오른 탐욕스러운 사업가들, 부정을 저질러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 정작 자기 자신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안심한다. 적어도 자기는 그렇지 않으며 그런 사람들보다 훨씬 깨끗하고, 도덕적이며, 경건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이다. 아니, 안심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타인들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그들과 자신을 차별화하기까지 한다. 인간들이 생각하는 불의와 불경건은 대충 그런 정도다.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성경을 이해했다면 그 사람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하는 것이 인간 스스로의 선악 판단 기준이다. 고난에 처한 욥을 찾아온 친구들은 욥의 고난의 원인을 죄에서 찾으려고 그에게 율법적 잣대를 들이댔다. 이에 대해 욥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끝까지 굽히지 않고 주장한다. 이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엘리후는 욥과 친구들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5 너는 하늘을 우러러 보라 네 위의 높은 궁창을 바라보라 6 네가 범죄한들 하나님께 무슨 영향이 있겠으며 네 죄악이 관영한들 하나님께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7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으시겠느냐 8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 (욥 35:5-8).
 
인간들은 자신들이 정한 선악 기준이 곧 하나님의 선악 기준과 동일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각자 눈에 보이는 대로 선악을 판단하고 그것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욥기는 그것에 정면으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인간들이 행하는 선과 악은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인간들이 범하는 죄는 인간들에게나 해가 될 뿐이고 반대로 인간들의 선한 행위는 인간들이나 의롭게 할 뿐이다. 하나님이 인간들의 행위에서 도대체 무엇을 받으시겠는가? 인간들이 행하는 선악 행위는 하나님의 기준에는 결코 미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 생각에 의롭게 보이는 행위를 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인간의 판단 기준으로는 탐욕스러운 삶을 살아 온 세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고 경건한 삶을 살아 온 바리새인보다 훨씬 중한 죄인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다. 우리 역시도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만으로 사람들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로마서 1장 25절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과 맞바꾼 사람들에 관해 말하고 있다. 인간들은 늘 선악 문제에 집착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참과 거짓의 문제를 다룬다.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예수님 한 분뿐이다. 진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집착하고 있는 어떤 도리가 아니라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그 자체다. 그렇기에 진리는 이념이나 법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실체다. 그가 진리라면 그 외에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들은 거짓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단 하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기에 그분만이 진리인 것이다. 진리를 거짓으로 바꾼 사람들은 삶을 엉망으로 살아왔거나 혹은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걸 통해 하나님을 만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자들이다.
 
이어지는 성경 말씀은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들은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섬기고 예배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피조물을 창조주의 자리에 올려놓고 신으로 섬긴다. 그들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자신들이 섬기는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한다. 도대체 이런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누구며 그들은 왜 창조주와 우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걸까? 많은 성경 독자들은 우상숭배가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거라고 착각하기 십상이다. 자기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자고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우상 숭배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우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모든 걸 아우르는 개념이다. 특히나 로마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쓴 글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로마 교회의 교인들에게 편지한 것이다. 그렇기에 우상 숭배 문제는 믿지 않는 이방인들이 아니라 바로 믿는 성도들을 향한 경고임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주를 대신하여 예배하고 섬기는 피조물은 무엇일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은 절대 그러지 않는다고 자신할 것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다. 하지만 한걸음만 더 들어가면 누구나 예외없이 우상 숭배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상 숭배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 5:5).
 
바울은 땅에 있는 지체를 음란함, 깨끗지 못함, 악한 욕망, 과한 탐욕 등으로 보았다. 그리고 이 하나하나를 우상숭배로 여겼다. (우리 성경에는 탐심을 우상 숭배로 번역했는데 정확하게는 ‘이 중에 어떤 것이든 다 우상 숭배다’ (ἥτις ἐστὶν εἰδωλολατρεία (헤티스 에스틴 에이로로라트레이아))라고 번역하는 게 옳다고 본다.) 결국 우상 숭배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자기를 꾸미려고 지나치게 욕망을 갖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려는 욕심도 포함된다. 그렇기에 종교적 열심을 통해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조차 위험할 때가 있다. 우상 숭배는 결과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는 반드시 교만과 타인을 정죄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타인을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하고 쉽게 정죄하는가? 자신의 삶을 늘 타인과 비교하며 은근히 드러내 자랑하고 싶지는 않은가? 만약 끊임없이 그런 마음이 든다면 한 번쯤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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