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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21,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스물두번째: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 (2017-1-22)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18-19절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선언했던 바울은 이제 하나님의 의와는 정반대인 진노에 대해 언급한다. 바로 앞 구절인 17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론 하나님의 의는 믿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준다. 그런데 믿음 안에 있는 의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다 보면 하나님의 진노에 대해서는 무심해지기 쉽다. 그 진노가 자기와는 별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사실 17절과 18절은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이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동시에 하늘로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7절과 18절은 서로 완전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진노가 동시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근원지는 서로 다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 안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고 있고 하나님의 진노는 하늘로부터 나타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향하고 있는 대상도 다르다. 하나님의 의는 복음 안에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는 불의와 불경건 위에 부어진다. 하나님의 의로 옷 입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진노 아래서 두려움에 떨고 있느냐는 오직 그 사람이 복음 안에 있냐 없냐에 의해 결정된다. 복음 안에 머물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들은 불의하고 불경건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의는 무엇이고 불경건은 무엇일까? 모세 율법에 담겨 있는 두 가지 중요한 가치는 의와 거룩이다. 헬라어로 의는 ‘디카이오스’ (δίκαιος)고, 거룩은 ‘하기오스’ (ἅγιος)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이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통해 구원의 의미를 설명하신다. 그 구원을 설명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 율법이다. 이집트에서 힘겨운 노예의 삶을 살고있던 그들을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구속하여 광야로 인도하셨다. 이집트에서 유월절 어린 양들이 죽은 뒤 50일째 되는 날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그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그 날이 바로 오순절이다. 오순절날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핵심 가치가 바로 의로움과 거룩함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앞에 설 때 반드시 의로워야 한다. 단 한치의 불의도 허용되지 않는다. 또한 거룩해야 한다. 어떠한 흠도 없는 존재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율법의 가치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번도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다.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내 그 땅의 풍습을 따랐다. 그들은 이집트의 송아지 신을 약속의 땅으로 가져왔고, 거기에 더해 가나안 사람들이 믿고 있던 바알까지 섬겼다. 그들은 온갖 우상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그 신들이 자기들에게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그러다가도 곤란한 지경에 처하기만 하면 여지없이 하나님을 불러 댔다. 이런 상황은 역사 내내 반복됐고 결국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나뉘어져 각각 앗수르와 바벨로니아에게 멸망 당하고 만다. 우상을 섬긴 유다 사람들은 70년간의 가혹한 포로생활을 겪어야 했고 약속한 기한이 끝나고서야 다시 고토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릴 때 어떤 고통을 겪게 되는지 뼛속 깊이 절절히 체험했다. 포로의 삶을 청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 온 유대인들은 에스라를 중심으로 율법의 가치를 재건하기 시작했다. 포로기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처절한 반성의 시간을 보냈다. 특히 BC 164년 마카비 혁명으로 일시적인 독립의기쁨을 맛본 후부터는 율법의 가치가 유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모세 율법에서 두가지 중요한 가치인 의와 거룩을 발견하고 현실의 삶에서 그것을 온전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이런 하시딤의 무리 중에서 특별히 행위를 통한 의로움을 강조한 무리들을 바리새파라고 하고 거룩함을 강조한 무리들을 에센파라고 불렀다. 게다가 극단적 에센파는 스스로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삶을 살기까지 했다. 이들 바리새인들과 에센파는 모두 내세를 강조하고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를 고대했다. 반면에 현세의 삶을 강조한 일련의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을 사두개파라고 불렀다. 이들은 아주 소수의 종교 지도자 층으로, 이들의 믿음은 거룩함이나 경건함보다는 현세의 축복과 번영에 초점을 두었다. 당연히 부활이나 내세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분위기는 위선적인 종교인들을 양산해 냈다. 많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로움과 거룩함을 다른 이들에게 입증해야 했다. 죄를 짓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으며 부정한 것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디카이오스’와 ‘하기오스’라는 작은 인형을 조각해서 집안에 모셔 두기까지 했다. 다시 말해 의로움과 거룩함이 또 하나의 우상이 돼버린 셈이다. 복음서를 보면 이들이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삼은 것이 바로 의로움과 거룩함이었다. 예수님이 세리, 창기 들과 어울리는 것을 본 종교 지도자들은 그 자체만으로 예수님이 불의하다고 정죄했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향해서는 부정하다고 비판했다. 그들이 얼마나 의와 거룩에 목숨 걸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들이다.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와 불경건 위로 나타난다는 말에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혹시라도 잘못한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까봐 두려운가? 그렇다면 당신은 여전히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처럼 하나님을 잘못 믿고 있는 자다. 그런 생각은 정확히 복음과 대치된다. 우리의 삶이 원치 않는 쪽으로 흐르거나 고난이 찾아 올 때 그 원인을 여전히 우리 자신의 행위에서 찾고 있다면, 우리는 율법주의에 물들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그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불의와 불경건은 우리의 행위나 존재에 판단의 기초를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근거는 오직 복음이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믿고 그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의로운 자요 경건한 자다. 오직 복음만이 하나님의 진노의 기준이지 우리의 자격이나 행위가 복음의 능력을 뒤흔들수는 없다. 복음 안에 있는가? 그렇다면 안심하라. 복음의 능력을 믿는 자에게는 결코 하나님의 진노는 없다. 충분히 의롭고 충분히 거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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