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3,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스물네번째: 하나님을 아는 지식 (2017-1-24)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18-19절
세상을 살다보면 아무 잘못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손가락질 당하거나 벌을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널려 있다. 성경에도 이런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다윗왕의 음모로 전쟁터에서 억울하게 죽은 우리야가 그렇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제로 범했고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야를 죽였다. 우리야가 잘못한 게 있다면 자신의 주군인 다윗에게 충성한 것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대가로 돌아온 것은 아내를 빼앗긴 것과 억울한 죽음이었다. 성경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는데 실제 그의 삶은 하자 많고, 이기적이며, 우유부단하고, 심지어 잔혹한 면까지 있었다. 그에 비해 우리야는 별로 하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우리야는 죽고 다윗은 장수했으니 인간의 눈엔 삶이 부조리하게만 보인다.
 
이처럼 인간의 눈에 비친 세상사들은 이해하기 힘든 게 참 많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인간들이 겪는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벌로 생각했다.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지 못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온갖 종류의 벌을 내리신다고 믿은 것이다. 누구는 재산을 빼앗고, 누구는 건강을 빼앗기도 하며, 심지어 어떤 이에겐 장애를 주기도 한다고 믿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선천적 맹인인 한 청년을 보고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다.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이니까 그의 부모니이까”(요9:2). 제자들이 깊은 성찰 끝에 이런 질문을 한 게 아니다. 그들은 장애를 보자마자 자동적으로 죄를 떠올린 것이다. 그런데 그 장애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으니 당연히 그 죄의 근원을 부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 셈이다. 이처럼 인간들 속에 깊이 뿌리 박힌 인과응보 사상은 모든 고통을 죄의 결과로 해석하게 만든다.
 
물론 인과응보라는 말은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세에 그만큼의 보응을 받는다는 불교적 개념이다. 하지만 불교든 기독교든 상관없이 이런 생각은 인간들이 지닌 보편적인 생각인 것 같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와 ‘불경건’에 대해 하늘로부터 나타난다는 구절을 읽는 순간 자동적으로 이런 태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았다. 바울은 인간들에게 ‘계시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그들 안에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불의로 진리를 막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지식이 그들 안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막고 있었기에 그 자체로 불의하고 불경건한 것이다. 이 세상에서 보여지는 삶으로 불의와 불경건을 판단할 수 없다. 부유하든 가난하든, 장애인이든 정상인이든, 건강한 자든 병든 자든 예외없이 불의와 불경건의 판단 기준은 삶의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 불경건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도 바울은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그 기준이라 말하고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그 지식은 분명히 모든 인간들에게 계시되었고, 그 지식은 이미 인간들 안에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또는 누구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계시하셨을까? 많은 사람들은 피조 세계, 즉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온 우주 만물을 통해 하나님이 그 지식을 계시하셨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나 그 모든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안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무리다. 위대한 창조주가 우주만물을 창조했다는 걸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창조주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라고 곧바로 연결짓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한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이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성육신하신 사건이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 그래서 예수님도 스스로에 대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고 말씀하셨다. 결국 예수님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는 말이다.
 
불의와 불경건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셨다.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은 예수 안에서 의로움과 거룩함을 얻었다. 결국 의와 불의, 경건과 불경건을 나누는 기준은 예수님이다. 모든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다. 바울은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중략) …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중략)…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중략)…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1:3-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자가 되었다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고 그분 안에서 기업이 되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다. 기독교는 시작도 예수님이고, 끝도 예수님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비밀은 깨달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로만 그 정체성이 설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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