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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19,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스무번째: 복음의 능력 (2017-1-20)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16절
오늘날 기독교는 사회적으로 많은 지탄과 비판을 받고 있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게 오히려 부끄럽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가나안 성도(믿기는 하지만 교회를 안 나가는 성도)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고, 심지어는 스스로 가나안 성도임을 떳떳하게 말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는 현대 기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기독교의 현주소가 어떠하든 상관없이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는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해야 할 대상임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어떠한 경우든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를 믿는 사람들의 행동 여부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는 그 자체로 존귀하다.
 
바울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했다. ‘에파이스쿠노마이’ (ἐπαισχύνομαι)는 단순한 수치심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상황은 여러 가지다. 대개의 경우 타인들 앞에서 자신의 은밀한 비밀이 노출되었을 때 부끄러움을 느낀다. 아담과 하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자신들이 벗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실 그들이 벌거벗었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창세기 2장에는 그들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벌거벗은 것이 누군가에게 드러나자 수치심이 들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될 때도 수치심을 느낀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이 느낀 감정도 수치심이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부끄러움을 뜻하는 헬라어 동사는 ‘아이스쿠노마이’ (αἰσχύνομαι)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 부끄러움은 존재 자체에 대한 부끄러움도 아니고 자신의 죄가 타인에게 알려저 명예가 훼손되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도 아니다. 그가 말하는 부끄러움이란 모두가 부정하며 비난하는 그 진리를 붙든다고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것, 심지어 그 진리를 타인에게 전한다고 비난받는 그런 것을 뜻한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십자가형을 당한 중죄인으로 폄하하고 그를 믿는 사람들을 미친 사람 취급하며 심지어 사회악이라고 여기고 손가락질해도 바울은 자신이 믿는 그 예수님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압송되어 오기 전에 벨릭스 총독 앞에서 재판을 받았다. 당시 바울을 고발한 대제사장 측 변호인 더둘로는 바울을 고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행24:5).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자신이 전염병 취급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속
했던 유대인 공동체에서 왕따를 당할까 두려워 비겁하게 예수님을 부인하고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리스도를 부인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다. 어찌보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믿음은 십자가와 부활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세우기 위한 것이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들었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즉,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바울의 태도는 바로 이 진리에 대한 확신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그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끈다. 아무리 중죄인이라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것, 그것이 복음이 가진 능력이다. 그래서 거지 나사로도, 맹인 바디메오도,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고생했던 한 여인도, 창녀로 일생을 보낸 마리아도 모두 다 담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바로 그 복음이 그들을 온전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은 복음을 믿으면 강풍도 잠잠하게 하고 고질병으로부터 해방되며, 말 안 듣던 사춘기 아이가 고분고분하게 되고 사업이 잘 풀리게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 말은 죄인 중의 괴수같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된다는 말이다. 한없이 더러운 존재가 가장 깨끗한 자가 되어 존귀하고 거룩한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그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은 이 세상 어떤 더러운 것도 깨끗하게 할 수 있고, 이 세상에서 가장 흉악한 죄인도 의롭게 만들 수 있다. 그들을 변화시켜 스스로 깨끗하게 하고, 스스로 선한 행위를 하도록 만든다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행위와 무관하게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로 만드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자들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기 위해 부활하셨다는 말로 정의된다. 이 간단한 진리가 어떻게 죄인들을 의롭게 만들고 더러운 자들을 어떻게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복음이 믿는 자들에게 주는 능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고전1:30).
 
복음은 진리를 알지 못하던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진리를 아는 지혜를 준다. 죄로 인해 멸망할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 하나님 앞에 누더기같이 너덜너덜한 우리의 존재를 깨끗하고 거룩하게 만드셨다. 그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통해 우리를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로 만드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를 비난 할 수 있다. 조금만 실수해도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더 많은 비난을 퍼붓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살아가면서 여전히 실수하고 넘어지며 때론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때론 부끄러운 행동으로 인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지친 몸에 생기를 불어 넣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 앞에 다시 설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그런 복음을 우리가 어찌 부끄러워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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