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fusaloftheCall
February 5,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서른 여덟번째: 하나님의 인자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 (2017-2-6)
#묵상 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7-2-6
오늘의 본문: 로마서 2장 4절
#로마서 서른일곱번째: 하나님의 인자를 가볍게 여긴다는 것
 
사도 바울이 제기하는 질문의 요지는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너희들이 가볍게 생각하고 있지 않냐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인자, 용납, 오래 참으심을 경험하고 그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경고하는 메세지를 담고 있다. 지금 바울의 편지를 받아 본 일차 독자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자들이다. 하나님의 인자는 넘치도록 풍성했고 그분의 용납하심은 끝이 없을 정도로 무한했다. 그들은 그런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아담으로부터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계속되었고, 지금도 하나님은 인내하고 계신다. 그 모든 것을 경험했고 또 잘 알고 있는 로마 교회 성도들이라면 그들의 신앙관은 분명 지금과는 달라야 했고 그에 따라 그들의 세계관도 변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옛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단지 지식이나 이론으로만 받아들인 것 같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질문한다. “당신들이 가볍게 생각하느냐(카타프로네이스, καταφρονεῖς)?” 이 단어는 어떤 것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만한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인간들이 그것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오래 참으심이 결국에는 복음을 낳았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은 인간들을 묶고 있던 모든 속박을 풀어 주셨다. 율법에 묶여 율법의 노예 노릇을 하던 유대인들을 해방시키고 그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뿐만 아니라 양심의 율법으로 늘 정죄감에 젖어 살던 이방인들도 그 정죄감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로마에 복음이 처음 전해졌을 때 그 복음은 그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안겨 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사랑, 복음의 완전성에서 떠나 또 다시 서로를 정죄하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지금 이런 로마 교회를 향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바울의 질문을 알기 쉽게 풀어쓰면 이렇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너희들이 어떻게 이렇게 가볍게 여길 수 있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용납하심을 이리도 쉽게 잊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어떻게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있지 않다.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복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복음의 가치는 사람마다 그 정도가 다르다. 사람마다 복음의 가치가 다르다는 것은 각자가 지닌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생긴다. 누구나 예수님을 믿으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고 노래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한 걸음만 더 들어가면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너무도 많다. 그 때문에 예수님의 도움으로 세상 것을 추구하고 신앙조차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데 교묘히 이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이상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적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이 된지 오래다. 세상 가치관을 그대로 지닌 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여전히 세상적 가치가 가치롭고, 세상이 옳고 선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내게도 소중하다면 그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사실 복음은 우리를 향한 정죄와 심판의 권한을 하나님이 포기하셨다는 기쁜 소식이다. 인간은 누구나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재판의 자리까지 끌고 가지 않기로 작정하시고 법적 용어로 공소권 없음을 선언하셨다. 그 대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를 십자가에서 심판하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 죄에 대해 이미 사형이라는 벌을 내렸으니 당연히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더 이상 벌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 것이다. 복음은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겐 공짜로 주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상적 가치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대가가 치러졌다. 하나님은 그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우리들에게 자유와 안식과 평강을 주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러한 복음의 가치를 이내 잃어버린다. 정말 자신이 그러한 대가를 치렀다면 어찌 기억하지 못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 본인이 구원받았다면 어떻게 그 아들의 희생을 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너무도 가볍게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그의 부활도 남의 일 보듯 여긴다. 그래서 그의 죽음과 부활이 만들어 낸 엄청난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만들어 낸 그 복음은 나를 향한 정죄의 칼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정죄의 칼날도 거두어 들이게 만든다. 더군다나 복음은 우리 안에 있던 정죄의 수단인 선악 판단 기준도 무력화했다. 우리가 타인들을 비방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회수해 간 그 선악 판단 기준을 여전히 붙들고 우리 마음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자들로부터 비난 받을까봐 두려워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 말고 황급히 자리를 뜬 베드로를 심하게 나무랐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18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갈 2:16~19).
 
바울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범법하게 만든 때문이라는 것이다. 율법과 선악 판단 기준을 사용하여 타인을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용납하심,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들은 이미 그 자신이 하나님이나 다름없다. 당신은 누구를 비난하고 판단하고 있는가? 그럴 만한 자격을 하나님이 당신에게 부여한 적이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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