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31,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서른두번째: 사형에 해당되는 죄 (2017-2-1)
오늘의 본문: 로마서 1장 32절
인간들의 불의과 불경건에 내려진 하나님의 진노는 모두가 사형으로 귀결된다. 인간 사회에서는 죄의 경중에 따라 형량도 달라진다. 가벼운 죄는 경고나 훈계로도 충분하지만 어떤 죄는 벌금을 내기도 하고, 어떤 죄는 징역을 살기도 한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지만 사형을 선고받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판결은 오직 사형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앞에 서면 사느냐 죽느냐 두 갈래뿐이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사람, 의로운 사람은 생명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불의한 자, 불경건한 자들에게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예외는 없다. 동성애를 한 사람도 사형이고, 뒤에서 남의 험담을 한 사람도 사형이다. 교만한 사람도 사형이고, 불효를 저지른 사람도 사형이다. 하나님께는 죄의 경중이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거룩한 하나님의 잣대로는 죽음에 해당한다. 그렇기에 하나님 앞에서 죄의 경중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가 행하는 선으로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거룩에 다다르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그런데도 이만하면 자신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이다. 의와 거룩은 인간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서 있을 때 우리를 향해 거룩하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다. 그렇기에 인간들끼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간들은 각자의 잣대로 자기들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한다. 사람마다 죄에 대한 기준도 다르고 의에 대한 기준도 다르다. 그 때문에 성도들이 모인 교회 안에서도 이런저런 다툼이 있는 것이다.
 
복음은 바로 이런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인간들이 세워놓은 의의 기준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남들뿐 아니라 스스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떤 분들은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러한 반문이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성경에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등등 우리가 이미 죄라고 알고 있는 여러 기준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율법들은 실제로 인간 사회에서 각자의 행동을 제한한다. 게다가 이러한 성경의 기준들이 사회법으로 만들어져서 지금까지도 적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들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법과 성경의 법이 거의 같기 때문에 사회법을 곧 성경의 법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어떤 이유로 사람을 죽인 한 살인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 살인자는 성경의 법과 사회의 법을 동시에 어긴 셈이다. 그가 저지른 살인은 하나님 앞에서도 큰 죄고 사회에서도 용서받기 어려운 중죄다. 그런데 사회법과 하나님의 법은 그런 살인자를 다루는 방법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이 세상의 사회법은 그 살인범을 어떤 식으로 다루는지 보자. 먼저 그 살인범은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어디든 숨을 것이다. 경찰은 그런 살인범을 끝까지 추적할 것이고 결국에는 체포되어 재판정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죄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긴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거나, 아니면 죄질에 따라서는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설령 운 좋게 복역을 끝내고 출소를 한다고 해도 살인자라는 낙인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그래서 제 아무리 법적 책임에서는 벗어났더라고 평생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거나 소외당하며 살아가게 된다. 세상의 심판은 계속되고 그는 여전히 괴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설령 그가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해도 말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그 살인범을 어떻게 다루실까? 한 순간의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긴 했지만 그 죄는 당사자에게 엄청난 심적 부담이 될 것이다.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하고, 어디에 있든 불안하고 떨릴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하나님 앞에서도 그럴 것이다. 결국엔 잡히고 법정에 서고 감옥에까지 들어간다. 이런 살인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런 그가 어느 날 우연히 복음을 듣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죽었고 자신의 죄가 모두 사함을 받았다는 복된 소식이다. 하지만 죄의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조금이나마 죄를 씻어보려고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이런 저런 선한 일도 해보지만 여전히 자신은 도저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중죄인인 것 같다. 그런데 아는가? 하나님은 그를 살인자로 보지 않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정죄함이 없다는 말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용서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상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침내 그 살인자는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라는 터에 서게 된다. 그 순간 그를 사로잡고 있던 죄의식은 사라지고 마침내 하나님과 자기가 화목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의롭게 된 것이다.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낫고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롭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법은 죄인을 다루는 데 있어서 사회법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가끔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 죄를 갚아야 할 의무가 사라졌다고 해서 인간들 사이에 치러야 할 의무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실 하나님은 인간들이 저지르는 죄에 일일이 관여하지 않으신다.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마다 즉시 심판하셔서 병에 걸리게 하거나, 경제적으로 파산하는 등 불이익을 준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그리도 자주 죄를 짓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들을 무작정 용서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으심으로 우리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심판을 완결하신 것이다. 인간에 대한 판결은 사형 선고로 끝났고 인간의 대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우리의 사형 집행을 마무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사형 선고와 사형 집행의 전 과정이 곧 자신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인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형벌이 더는 없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갚아야 할 의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요즘처럼 로마서 1장 32절이 무겁게 다가온 적이 없다. 내가 당해야 할 사형을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당했다. 그래서 복음은 인간들이 제 정신으로 받기에는 너무도 무겁고 가슴 아픈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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