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9,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마흔 한번째: 환란과 어려움 (2017-2-10)
#묵상 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7-2-10
오늘의 본문: 로마서 2장 9-11절
#로마서 마흔한번째:환란과 어려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의 힘으로 의롭게 살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일견 선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악이다. 자신들의 노력을 통해 의를 이루어 내려는 사람들, 하나님의 의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만들어 낸 의를 헌신짝 버리듯 내팽개치고 자신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낸 의를 내세우려는 사람들의 삶을 바울은 환란과 어려움으로 단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 선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인간들이 선을 행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눈에 인간들이 행하는 것 중 어떤 것을 선으로 보실까? 사도 바울은 같은 로마서 3장에서 인간들 중에 선을 행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먼저 그의 주장을 들어보자.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9~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눈에 의인이라 인정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태어나서 한번도 죄를 짓지 않고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죄인이다. 선을 행하는 인간들은 없다. 하나 같이 죄인이다. 사도 바울의 이 같은 선언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라는 오늘 본문 말씀을 한 마디로 무력화하고 만다. 결론적으로 인간들은 도저히 선을 행할 수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얻을 길이 전혀 없다는 말이다. 바울은 왜 이처럼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내용을 한 편지 안에 기록하고 있을까? 사도 바울이 바로 뒤에 기록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라는 절망적 선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선을 행한다는 의미는 다르게 해석 되었어야 마땅하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절대로 선을 행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이러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인간들도 충분히 선하며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다고 말이다. 모든 인간들을 악한 존재로 인식하고 인간에게서 어떤 선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은 인간의 가치를 지나치게 폄하하는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들끼리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책이고 철저하게 하나님이 인간들을 향해 선포하신 메시지를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선을 행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도 하나님의 기준에서 하신 말씀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선언했다. 인간들을 죄 아래 가두어 놓은 목적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통해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다. 로마서 11장 32절과 33절을 읽어보자.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2-3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 다른 말로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 두셨다는 말이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동일하다. 모태 신앙인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고 평생을 지내다가 병상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매한가지다. 하나님은 인간 측에서 만들어낸 조건으로 선악을 따지는 분이 아니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선하다는 평가를 받는 기준은 인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쥐고 계신다. 그 기준은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다. 철저하게 율법을 지켜내어 인간들이 보기에 어떤 하자도 찾을 수 없는 완전한 사람이나 늘 말썽만 부리고 살아서 의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도긴개긴이다. 의를 재는 기준은 오직 그리스도로 만들어진 의 외에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차별이 없다!” 이 말은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는 말과 그 의미가 상통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만인은 법 앞에 불평등하다는 주장과 뜻이 맞닿아 있다. 이 세상은 도덕과 윤리라는 잣대로 사람들을 판단한다. 세상의 기준은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내린다. 반대로 공동체에 선한 영향력을 준 사람들에게는 보상이 주어진다. 그것이 세상의 논리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선하고 정의로운 삶을 산 사람도, 반대로 항상 루저처럼 못난 삶을 산 사람에게도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만들어진 의를 적용하기로 결정하셨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요지가 바로 그것이다.
 
성경의 독자라면,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체험한 사람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의로운 바리새인들보다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던 세리의 손을 들어 주셨다. 간음하던 여인을 데려와서 의로운 심판을 하려던 유대인들 대신에 수치심으로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그 여인의 손을 들어주셨다. 세리, 열두 해를 혈루병으로 보낸 여인, 다섯 번이나 남편이 바뀌고 지금 있는 남편도 자기 남편이 아닌 비련의 사마리아 여인, 태어날 때부터 눈 멀어 거지로 살아 온 바디메오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로움을 얻을 수 없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만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다. 이쯤되면 눈치를 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움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만들어서 동일한 의로 사람들에게 나주어 주신다는 것을.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누구나 동일한 의를 갖게 되어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다. 하나님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신다. 인간을 차별적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신 분이다. 그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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