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1,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마흔 세번째: 인간이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2017-2-12)
#묵상 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7-2-12
오늘의 본문: 롬2:13
#로마서 마흔세번째:인간이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있을까?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을 것이다.” 얼핏 들으면 이 선언은 마치 행위 구원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만약 이 말이 진리라면 누군가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구원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해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실제로 어떤 이들은 거두절미하고 이 구절 하나만 부각해서 사도 바울이 은혜뿐만 아니라 행위를 강조하고 있으며 이 말씀이 야고보서 내용을 뒷바침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예수님의 동생이며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실질적 지도자였던 야고보는 흩어진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할 정도로 행함을 강조했다. 물론 행함은 매우 중요하다. 비록 행함이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행함은 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만큼 실제로 중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 행함을 성도들의 믿음의 수준을 판단하고 차별화하는 잣대로 삼는다는 점이다. 행함은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우리를 삶을 인도하신 결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행위를 판단하고 측정하는 것도 하나님 몫이지 우리가 할 일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선해 보이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다 할 수도 없고,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의롭게 보이는 행동이 반드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게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각 사람의 행위를 판단하고 정죄한다.
 
사도 바울이 말한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함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의 진의는 그렇게 자신 있다면 율법을 들은대로 온전히 행해 보라는 말이다. 이 말은 일종의 역설 화법으로 ‘(율법을) 행해서 의로움을 스스로 입증해 보라!’는 것이지 실제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율법을 행해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라는 말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의롭다 함을 받을 것이다!’ 라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사실은 숨이 턱 막히고 가슴이 답답해지며 절망감을 느껴야 정상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내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 시도를 내려 놓고 그리스도께 매달리게 된다. 구원의 과정은 바로 그런 자신 만만함이 산산히 부서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물론 인간들이 쉽게 이런 반응을 보인다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인간들은 그리 쉽게 그리스도의 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일단은 먼저 자신의 행위로 의를 입증해 보이려고 애쓰고 노력하게 돼 있다. 처음 얼마간은 그같은 노력이 어느 정도 유효하게 보일 것이다. 물론 인간들 눈에 그리 보인다는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정도의 노력으로 쌓아 올린 의는 전혀 의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바울은 로마서3장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들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성취해 낼 수 없으며 결국에는 그 율법이 인간들에게 좌절만 안겨 줄 뿐이라고 결론내리고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
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롬3:19-20).
 
바울의 이 선언은 율법을 행하는 자가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오늘 본문 말씀을 완전히 무색하게 만든다.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은 그 율법을 지켜 내야만 의롭게 된다. 그런데 그 율법은 인간의 힘으로 지켜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면 일견 의롭게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보신다. 인간의 내면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개인적인 욕망이 들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런 욕망을 완전히 없애기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보시고 판단하는 것은 바로 그 내면의 은밀한 욕망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순수한 의로도 자신의 재산을 기부해서 불우한 이웃을 도왔다고 하자. 물론 그 사람은 매우 열정적이고 아무런 사심 없이 그런 선한 일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로로 타인들에게 그의 선행이 알려지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하고 그를 선한 사람으로 추켜 세운다. 그런데 이런 그를 또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그가 이런 선한 일을 한 의도를 의심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아마도 뭔가 다른 사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그의 선행을 폄하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 선행을 한 그 사람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도 속으로는 불편하고 섭섭해 하겠지만 겉으로는 자신의 선한 의도를 몰라 주고 비난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측은히 여기며 너그럽게 대할 것이다. 누가 뭐래도 자기만 떳떳하다면 괜찮다며 애써 참는다. 이 정도 되면 이 사람은 누가 봐도 칭찬할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유감스럽게도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선하다고 추앙하는 이 사람, 근거 없는 음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 이 사람도 실제로는 하나님 앞에서는 불의한 자요 심판의 대상이다. 왠 줄 아는가? 그는 이미 스스로를 그들과 비교하여 의롭고 선한 자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을 사람이 없으며 율법으로는 죄를 깨닫기만 할 뿐이라고 말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했다. 물론 이렇게 사는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선하다고 판단하는 게 문제다. 그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율법의 목적을 제대로 몰랐다. 하나님은 그대로 행하라고 율법을 준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으라고 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의 경중을 따지기 위해 율법을 주지 않으셨다. 율법은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게 하는 거울일 뿐이다. 물론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인간들이 자기 힘으로 그 율법을 행해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엄청난 수준의 선을 요구하는 율법에 굴복하고 마침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납작 엎드리게 된다.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교만을 넘어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의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은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울 수 없는 자임을 깨닫고 이를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이뤄놓은 가치있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무능력한 자기 실존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율법은 행하라고 주신 거지만 실제로 그 율법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따라서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이다. 오직 그 사실을 절절히 깨닫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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