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8,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마흔번째: 환란과 어려움 (2017-2-9)
오늘의 본문: 로마서 2장 9-11절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 첫째는 유대인의 그리고 헬라인의, 영혼에 환란과 어려움이!” 사도 바울은 악을 행하는 이들을 향해 저주에 가까운 말로 경고하고 있다. 우선 하나님이 정하신 악이 인간 사회에서 규정한 악과 같은 의미일까? 성경에서 악을 행한다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그 악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타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이 기독교를 비판할 때 가장 많이 많이 쓰는 단어가 있다면 바로 ‘배타성’이다. 예수님께 의존하는 것 외에 인간이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은 전혀 없다는 기독교의 주장은 다른 종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당연히 배타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다양성을 중시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접어들면서 기독교는 이런 배타성 때문에 외부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되고 점점 더 코너로 몰리게 되었다. 갈수록 상황이 더 악화되자 결국 기독교는 구원의 유일성을 주장하여 종교 갈등을 심화시키기보다는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인정하여 평화롭게 서로 공존하는 타협의 길을 택했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일견 평화를 이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아들만이 유일한 진리이고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기독교의 핵심 가치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에 대해 성경은 분명히 이렇게 밝히고 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4:12).
 
베드로의 이 선포는 바로 예수님을 심문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빌라도에게 압력을 가했던 대제사장 가야바와 안나스 앞에서 한 선포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대제사장 앞에서, 그것도 얼마 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한 그 장본인들 앞에서 베드로는 무슨 배짱으로 감히 이런 말을 했을까? 이 말 한 마디로 베드로는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었다. 이 말을 하기 전 베드로는 이미 하룻밤을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만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가야바와 안나스 앞에서 그가 한 말은 담대했고 추호도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왜그랬을까? 그 이유는 바로 그것만이 진리이기 때문이었다. 진리가 세상의 논리나 상황에 따라 타협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성경에서 악은 진리를 떠난 모든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떠난 그 자체가 악이다. 하나님을 떠나 인간의 힘으로 세상적인 의를 추구할 수도 있고 세상 누구보다 경건하게 살 수도 있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이 주는 혜택들을 마음껏 누리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는가? 그것이 바로 악이고 고통이라는 것을. 일찌기 하나님은 멸망해가는 남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면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악과 고통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렘2:19).
 
바울은 지금 악을 행하는 모든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의 영혼에 환란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경고한다. 환란과 고통은 죄를 지어 남들의 비난을 받거나 감옥살이를 하는 것 등을 의미하지 않는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 자기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존재가 되려고 애를 쓰는 것 자체가 악이요 고통이다. 남들보다 자신이 도덕적 우위에 서려고 애쓰는 모든 노력들은 고통 그 자체다.
 
인간의 욕망은 한이 없다. 한 번 마음 가운데서 욕망이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그 욕망은 스스로를 자양분 삼아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욕망은 흔히 생각하듯 부정적 언어가 아니다. 욕망이라는 뜻을 가진 핼라어 단어는 ‘에피두미아’ (ἐπιθυμία)다. 이 단어는 결코 부정적 의미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대로 온전히 이루려는 열정도 에피두미아다. 때론 뭔가를 간절히 원하는 선한 열정도 에피두이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여기에 원하다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도 에피두미아다. 성경에서 욕망이라는 단어는 중립적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어떤 때는 그 열정이 선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악이 되기도 하는데 그 기준은 열정이 무엇에 기반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열정이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 열정은 선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행하는 모든 열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다. 심지어 율법을 지켜 그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려는 열정도 죄악이다. 바울은 지금 그것을 고통이고 환란이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그 비결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깨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4).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억지로 안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행하신 그 십자가 사역의 완전성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겉으로 드러난 나의 행동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의연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정신이 강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 놀라운 결과물 때문이다. 환란과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평강과 안식을 누리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당신은 지금 무엇으로 인해 고통스러운가? 그것이 왜 당신을 힘들게 하는가? 오직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길이고 진리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이 평안 가운데 당신의 길을 인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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