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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ruary 13, 2017 | by B2B Missions
로마서 마흔다섯번째: 수네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 (2017-2-14)
#묵상 을 위한 #성경이야기 #scriptory
2017-2-14
오늘의 본문: 롬2:15-16
#로마서 마흔다섯번째:수네이데시스(συνείδησις)
 
양심(良心)이라는 단어가 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어진 마음’이다. ‘어질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다.’는 뜻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인간에게는 누구에게 양심, 즉 어진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마음의 본 바탕은 원래 너그럽고 착하며 슬기롭고 덕행이 높은데 살아가면서 점차 그 마음이 퇴색되고 변질되었다고 본다. 흔히들 ‘양심도 없냐?’ 또는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라는 말은 바로 이와같은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한글 성경은 로마서 2장 15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다.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5).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대신 양심이라는 게 있는데 그것이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낸다고 말하고 있다. 양심의 사전적 의미는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기준”이다. 따라서 양심이란 한 마디로 선악 판단 기준을 뜻한다. 세상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기준인 양심은 그자체로 선한 것일까 아니면 악한 것일까? 사실 ‘양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그 기준이 선하고 옳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 내면에 있는 올바른 기준인 양심에 어긋나면 악이고 불의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양심은 우리를 도덕적 삶으로 이끄는 매우 중요한 준거가 된다. 사도 바울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수네이데시스 (συνείδησις)가 있어 그것이 자신이나 타인의 행위에 대한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그것으로 행위의 준거를 삼아 자기와 다른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고 변론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양심이 인간의 행위를 사전에 정하고 사후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그 또한 율법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잘 아는 사단(四端)이라는 말이 있다. 사단이란 맹자가 주창한 것으로 인간 본성에 내재하는 선한 마음을 일컫는다. 맹자는 모름지기 인간이라면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통해 이러한 네 가지 도덕적 기준을 끊임없이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맹자가 말하는 사단은 다음과 같다.
 
측은지심 (惻隱之心):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어진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 (의로운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사양할 줄 아는 마음 (예의바른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
 
맹자는 사단(四端)을 인간 본성의 근간이요 근원적인 ‘이치’ (理)로 보았다. 즉, 인간 본성에 근원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선한 성질이 바로 사단인 것이다. 성경에서는 이것을 로고스(logos)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한복음 1장1절에 말씀으로 번역된 그 로고스가 바로 ‘이치’에 해당한다. 한글 성경은 이를 진리라고 번역했다. 진리(眞理)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참된 이치’다. 동양 철학, 특히 맹자의 사단(四端)설에 의하면 인간 본성에는 근본적으로 선한 마음이 있으며 이를 실천하고 훈련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들은 누구나 선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이 논리를 따른다면 인간은 원래 내면 안에 진리 즉, 참된 이치를 실천할 수 있는 네 개의 도덕적 본성이 이미 내재해 있는 셈이고 따라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누구나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언뜻 보면 바울도 맹자와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분명 이 같은 맹자의 주장에 매료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맹자의 사단설과는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성문화된 율법으로, 이방인들은 내면화된 율법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는데 사실상 둘 모두는 하나님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인간들 각자가 선악 판단 기준을 갖고 있으면서도 노력해서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이 죄가 아니라 각자 가진 선악 판단 기준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판단하고 있는 그 자체가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도덕적 판단도 허락한 적이 없다. 선악에 대한 판단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따라서 인간들에게 선한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또는 나는 왜 이 모양이냐? 라든지 나 정도면 괜찮은 거 아냐? 하면서 자신은 물론 남까지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죄다. 여기서 사도 바울의 주장을 조금 더 들어보자.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고전 10:29).
 
인간들이 자신이 가진 ‘수네이데시스’로 함부로 남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 자유가 남의 ‘수네이데시스’로 말미암아 어떻게 판단을 받는단 말인가?” 이 말씀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수네이데시스로 타인을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각 사람의 행위는 하나님이 알아서 판단하실 일이다. 그러니 절대로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지 말라.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하나님 놀이를 하는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대적자요 사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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