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January 5, 2015 | by B2B Missions
‘갑질현상’과 낮은 곳

부천에 있는 한 백화점 지하 주차장 바닥에 무릅을 꿇게 만든 어떤 모녀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언론들은 ‘갑질모녀’라는 제목으로 속보를 쏟아 냅니다. 사실인 즉 이렇습니다. 쇼핑을 마친 운전자인 어머니가 딸을 기다리는 동안 차를 대충 세우는 바람에 두 대가 세울 수 있는 곳을 차지하고 있어 주차요원이 이동해 줄것을 요구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합니다. 운전자가 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있자 주차요원이 차량 뒤에서 주먹질을 했고, 이에 격노한 어머니와 마침 쇼핑을 마치고 온 딸이 합세하여 그 주차요원과 다른 주차요원 세명을 무릅을 꿇게 했다고 합니다. 물론 욕설이 빠질리가 없었죠. ‘땅콩회항’ 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더니 이제는 각종 ‘갑질’로 세상이 어수선합니다. 사람들이 이제는 돈으로 지위로 등급을 나누고 있고, 인격조차 각자의 등급에 맞추어 취급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사실 ‘갑’과 ‘을’이라는 말은 주로 비지니스에서 통용되는 말로 물건을 공급하고 공급받을 때 공급하는 자가 ‘을’이고 공급받는 자가 ‘갑’입니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작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더더군다나 ‘파워’의 강약을 나타내는 말도 아닙니다. 원래 ‘갑’과 ‘을’의 개념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라는 열개의 천간 (10간)에서 유래한 말로 시간과 때를 나타내는 12간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와 더불어 60갑자를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이 10간은 각각 순서가 아니라 각각의 다른 색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그래서 ‘갑’은 분명 ‘을’에 앞서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맨 마지막 자인 ‘계’가 ‘갑’에 앞서 있으니 순서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운동장에 열명의 아이가 각각 다른 색의 옷을 입고 둘글게 원을 그리고 선 것을 연상하시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겝니다. 그래서 ‘갑’이라고 ‘을’에게 우위를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근거도 없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과 색갈의 변화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고, ‘육십갑자’가 끝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끝나는 때를 다시 같은 갑자가 돌아왔다고 회갑(回甲)이라고 부릅니다. 이웃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마당히 해야 할 시대의 사명을 다하며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10간과 12간지는 그것을 설명하는 단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화를 설명하는 단어가 언제부터 사람들의 서열을 정하고 등급을 메기는 단어로 둔갑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초대교회시절에는 사람들의 출신, 인종, 남녀 등등에 따라 전혀 다른 대우를 받았습니다. 특히 노예들이 많았는데 노예들은 주로 점령지에서 포로로 끌려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노예들은 전혀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법적으로로 살아있는 재산 (living properties)로 일반 부동산이나 동산과 같이 재산목록에 기재되어 사고 팔고가 가능했으며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폐기처분도 할 수 있었습니다. 노예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처사는 당시 문화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자유인 특히, 로마제국의 시민권자들은 이를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양심있는 사람들은 이런 노예제도에 대해 반기를 들기도 했는데, 당시 스토아 철학자 중의 한사람인 에픽테토스 (AD55년경~ 135년경)은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하며 다름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종들은 사회속에서 열등한 지위에 있으며 앞으로도 그런 지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다른 자유자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신의 성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러한 성품들을 향유하고 있다. 따라서 종들도 당신들과 동일한 형제요 신의 아들들이다. 당신들과 동일한 씨에서 태어났고 당신들과 동일하게 신이 씨를 뿌린 자들이다.  따라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는 무관하게 종들은 본성적으로 자유자의 친족이며, 형제들이며 신의 자녀들이다.”

물론 성경도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안에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사회적 위치나 신분을 가지고 누가 누구에게 주장을 할 수 없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엡 6:9).

성경은 분명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사람들이 동등하며 하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우리들도 스스로를 돌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는 계급화가 되어 있지는 않은지 사회에서 사람들을 권력이나 돈이나 사회적지위에 따라 판단하고 그것을 추구하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때 마침 온누리교회가 2015년 한 해의 표어로 ‘낮은 곳 더 낮은 곳으로 – Go Lower 2015’라고 정했습니다. 이 세상이 너무 높은 곳에 있고, 교회의 문턱마져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교회가 권력화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이 표어가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표어 자체가 주는 어색한 느낌은 어쩔수 없는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란 십자가 앞에 철저하게 자신들을 부인하고 가장 낮은 곳에 처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이고 교회는 그 낮아진 사람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더 낮아질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래서 이 표어는 우리의 실존을 깨달으라는 말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실존—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자—을 자각할 때 우리가 어느 누구도 주장할 수 없는 위치임을 알게 됩니다. 종으로 오신 그리스도가 그렇게 본을 보이셨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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